국민화합과 연좌제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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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보위가 그동안 많은 국민에게 불편과 피해를 주어온 신원기록을 일제히 정리하고 연좌제를 폐지키로한 것은 국민화합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획기적이고도 매우 뜻깊은 조치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국보위가 밝힌 신원기록의 주요정리유형은▲6·25당시 착오나 과장된 소문등을 확인 않고 기록한 경우▲적치하에서 생명보존책으로 부득이 부역을 했거나 그 죄질이 가벼운 경우▲위와 같은 기록이 있더라도 본인이나 가족이 충실히 국가에 봉직한 경우▲기타 기록에 있어서도 현재의 대공상 위해도가 약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등이 포함되리라고 한다.
합리적인 기준에 따른 심사를 거쳐 진행될 이러한 신원기록의 정리가 새시대를 여는 정지작업의 일환이기 때문에 끝내는 연좌제의 전면철폐로 이어진다고 기대해도 무방할것 같다. 연좌 또는 연좌로 불리는 이 제도는 한마디로 전근대사회의 유물이다. 이조시대에 널리 행해진 이제도는 일점 범위의 친족에 대하여 형사상의 연대책임을 지움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개화물결이 밀어닥친 한말에 형사책임개별화원칙을 칙령으로 선언함에따라 폐지된 연좌제가 6·25동란을전후해서 북괴의 통일전선전략을 분쇄하기 위해 활용되어왔다는 것은주지하는 바와 같다.
북괴와의 생존을 건 대치상황에서 국가안위상 불가피한 조치였다고는하지만 연좌제가 존속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어두운 일면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동란의 와중에서 부가항력적으로나마 부역을 한 경우라면 몰라도 왜곡·과장된 소문이 확인도 안된채 그대로 기록되어 지금까지 누명을 쓰고 있다면 그 억울함은 뼈에 사무친다고해서 지나친 말이 아니다.
더구나 그런 허무맹랑한 기록때문에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자녀들의 신상에까지 누가 미친 경우마저 있었다고하니 그들을 구제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혈연에 대한 귀속감이 점차 없어지는 것이 현대사회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우리민족의 전통적관념에 비추어 개인위주의 서구식 사고방식이 바람직한지 여부는 차치한다해도 그것
어쩔수 없는 정세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버지가 6·25때의 부역행위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데 그 아들이 반공의 역군으로 자라 월남전에서 혁혁한전공을 새웠다는 최근 어느 신문의 「피처·스토리」에서 우리는사상적으로 흔들렸던 아버지와는 달리 투철한 반공의식으로 무장된 젊은세대의 믿음직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얼굴도 잘 모르는 가족이나 친척의 과오때문에 이러한 젊은이에게 좌절을 안겨준다는 것은 기성세대의 실책이며 국가적으르도 큰 손실인 것이다.
6·25가 난지도 벌써30년, 그때의 20대가 초로의 50대가 되고 그때의 갓난이가 어엿한 30대의 중견사회인이된 시공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많은 사람들이 30년전의 상처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러한 폐단 때문에 역대정권은 간혈적으로 연좌제폐지를 거론했지만 그때마다 흐지부지되고 국보위에 의해 비로소 구체적인 실현이 확약된 것이다.
국보위가 이번에 연좌제폐지를 내세우면서 신원기록정리에 관한 세부지침까지 예시한 것을 보면 그동안 이를 위한 치밀한 준비과정이 있었음을 엿보게 해준다.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위한 국민화합의 기반을 다지면서 국가안보에는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된다는 두가지 원칙밑에서 전과말소를 위한제도적 장치마련에 이은 국보위의 또하나의 결단인 연좌제폐지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것을 바라마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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