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족벌독재정권의 호전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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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비극에 대한 기억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데 뜻이 있다. 이제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면서도 오히려 더 생생하게 우리가 6.25를 기억하는 것은 다시는 6.25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다짐이 있기 때문이다.
6.25 30돌-. 피와 통곡과 고통이 조국의 산하를 온통 뒤덮은 그 악몽으로부터 30년이 흘렀다.
6.25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전쟁이란 관념적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전쟁의 참화가 비록 숱한 소설과 시의 주제로 되지만 그것은 결코 낭만의 몽상이거나 한번이라도 겪음직한 일일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부정하고 모든 인간적인 것을 파괴함으로써 반 인간의 극치를 벌이는 것이다.
더욱이 6.25는 동족간의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그 비극성은 훨씬 다중적 이었다. 남북이 밀고 밀리면서 친구가 친구를 뒤지고 친척이 친척을 밀고해야 하며, 동창과 동료가 서로를 잡고 잡히는, 가장 일차적인 인간관계의 붕괴현상마저 빚었던 게 6.25가아닌가.
적과의 대결이라는 일반 전쟁과는 또 다른 차원의 비극이 벌어졌던 것이다.
뿐만 이랴, 잔적 소탕과정에서 낮 밤이 다르게 겪은 양민의 고통은 얼마였으며, 이른바 도강 파다, 잔류 파다하여 치른 대가는 또 얼마였던가. 또 30년이 지나도록 풀 길이 없는 1천만이산가족의 한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처럼 6.25의 비극은 일일이 들 수도 없거니와 아예 필설로 그려내기조차 불가능하다.
다만 한 가지, 인명피해만 보더라도 6.25가 어떤 다른 전쟁보다 더 비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남북한을 통틀어 우리 민족의 인명손실은 약5백만 명으로, 이는 1할 이상의 민족이 화를 입었음을 말해주는 숫자다. 이것은 인류사상 가장 대전으로 치는 2차 세계대전 중 각국 이입은 인명 손실률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2차 전으로 소련은 22명중 1명, 독일은 25명중 1명이었고 일본은 46명 중 1명이었으며 영. 프 등은 1백50명중 1명 꼴이었다.
이것만 보아도 6.25가 얼마나 가혹한 참와였는지 그 일단을 짐작 할 만 하다.
그 고통의 와중에서 태어난 세대가 이제 3O세가 됐다. 이들과, 포성의 기억이 제대로 남아있기 어려운 35세미만의 세대들을 합치면 우리인 인구의 72.6%나 된다. 말하자면 우리 국민의 7할 이상이 6.25의 체험 없는 인구인 셈이다.
이들이 6.25에 대해 갖는 관념과 안목이 체험한 세대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울러 체험한 세대라도 세월이 가는 동안 기억도 점차 엷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기억이 엷어질수록 평화의 기반도 그만큼 굳어진다면 그런 다행이 없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6.25의 기억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민족의 비극을 일으킨 북한공산집단의 호전성은 오히려 높아만 가고 남북대화의 장래나 평화정착의 가능성은 아직도 까마득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최근 몇 개월 사이 연달아 시도된 간첩선침투나 무장공비의 남파기도 등에서도 우리는 북한공산집단의 체질을 다시 한번 실감하거니와 79년이래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각종 정전협정 위반사례를 보더라도 우리는 또 다른 전쟁위험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오늘의 북한공산집단이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종제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이른바 공산주의의 보편성에도 어긋나는, 굳이 말하자면 소위 공산봉건체제라고나 할 원시적인 족벌독재정권에 불과하다. 이 경직되고 폐쇄적인 집단의 예측 불능 성을 우리는 항상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6.25 30돌을 맞으면서 우리는 비극에 대한 기억을 새로이 함으로써 비극을 되풀이 않겠다는 결의를 다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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