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피부과를 찾았다. 여름이라 잡티는 만발하고 모공은 팽창해 대책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고민을 토로하는 내게 의사가 말했다. “아유, 이 정도면 괜찮으신데요 뭘.”(양심적인 분이다. 혹은 시력이 좋지 않거나). “그럴 리가요. 뭐 방법이 없을까요?” 의사를 열심히 설득해 거액의 관리 프로그램을 결제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정신이 든다. ‘의사도 괜찮다는데, 나는 왜 앞장서 나의 모공을 미워하고 있는 것인가.’
지난해 칸 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생활용품업체 도브(Dove)의 광고 시리즈가 있다. 전직 미 연방수사국(FBI) 몽타주 화가였던 남성이 커튼을 사이에 두고 여성과 대화를 나눈다. 여성은 자신의 눈·코·입·턱 등의 생김새를 자세히 설명하고, 화가는 여성의 얼굴은 보지 않은 채 묘사만으로 몽타주를 그린다. 여성이 자리를 떠난 후, 다음 사람이 들어온다. 화가는 조금 전 방에서 나간 여성의 생김새를 묘사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타인의 설명에 따라 완성된 또 하나의 그림. 두 개의 그림에 그려진 모습은 많이 다르다. 스스로 자신을 설명했을 때보다 타인에 의해 묘사된 얼굴이 훨씬 밝고 아름답다. 그리고 실제 모습에 가깝다.
‘여성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못생겼다고 생각한다’는 통념을 증명하는 광고다. 위 실험에서 스스로 묘사한 모습이 더 아름다웠던 경우는 전체 참가자의 4%에 불과했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한 케이블 방송의 메이크 오버(makeover·변신)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거구의 잇몸녀’ ‘의부증 비만 아내’ 등의 별명이 붙은 참가자들은 변신 전 외모 때문에 겪었던 끔찍한 고통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중 어떤 이는 스스로 묘사하듯 ‘외모 때문에 모든 일이 꼬일 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수배자의 경호원도 예쁘면 칭송받는 세상,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에 토를 달 배짱이 없다.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외모 스트레스도 적어질까 했으나 그렇지도 않은 모양. 얼마 전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해를 거듭할수록 외모 때문에 고민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니 말이다. 어쩔 수 없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맘에 안 들 때마다 시력을 의심하기로 한다. 나는 (아마도) 내 생각보다 아름답다. 도브의 몽타주 실험에 참가한 여성들은 말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찾아내고 고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며 행복해하련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