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류의 지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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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국 산서생의 산들사이를 끼고 남하하는 부하의 물줄기는 유관근처에서 동쪽으로 굴절하여 화북간원으로 빠져 들어간다.
여기 그 물줄기 속에 우뚝 솟아있는 큰 바위가 있다. 이를 가리켜『중류의 지주』라고 한다.
세찬 물결은 이 바위를 당장에 삼켜버릴 듯 소용돌이 친다. 얼핏 보면 바위는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갈 것 만 같다.
그러나 지주는 끄떡도 없이 장구한 세월을 버티어 서 있다. 중국 사람들은 이 『중류의 지주』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한다. 그것은 시류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신념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자세라고 보기도 한다.
시대의 흐름을 등진 완고한 타입을 상징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 어느 쪽이나 보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때로는 지주에도 아랑곳없이 굽이쳐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기는 게 옳다.
때로는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버티어 나가는 힘이 아쉬울 때도 있다.
분명한 것은 역사란 이 두가지 힘이 서로 얽혀 형성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또 지주가 아쉬울 때도 있고 지주를 뛰어넘는 물결이 아쉬울 때도 있다.
또 분명한 것은 물결에 휩쓸리기는 쉬워도 지주가 되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지주』를 섬긴다.
만약에 지주가 없다면 역사가 어떻게 표류되어 같지 모른다. 지주는 단순히 물결을 막기만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소중한 표식가 되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역사는 이러한 물결처럼 자꾸만 흐르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물결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어디서 멎는지를 모르기 쉽다. 그저 휩쓸려 떠내려가며 있는 것이다. 우리네 역사도 그랬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것은 맥없이 생겼다 꺼지는 무수한 물거품과도 같을 뿐이었다.
그래서 한이 남고 한이 우리네 심정을 물들여 놓았다.
그리하여 『몰법자』의 체념을 키워 내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말의 『몰법자』의 참뜻은 그저 『다 틀렸다』로 끝나지 않는다고 『다시한번 시작하자』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에겐 한의 문화가 낯설다. 황하의 지주 탓일까.
그냥 슬퍼할 때가 아니다. 불안에 몸을 움츠리고만 있을때는 아니다. 슬기를 되찾고 화합을 구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뭣보다도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든든한 『지주』 를 마련해 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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