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명주산골 부연동 「너와집」마을 보존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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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원시의 잔창이 현대속에 숨쉬고 있다.
조개껍질을 엎어놓은듯 납작한 너와집. 희미한 등잔불밑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길쌈이 분주한 아낙네들. 곡식을 찧는 디딜방아와 절구소리도 들린다.
강원도명주군연곡면삼산3리 부연동마을. 국립공원 소금강에서 서북쪽으로 60리. 태백준령이 병풍처럼 에워싼 해발5백m고원분지에 위치한 이마을에는 갖가지 원시의 자국이 간직돼 있다.
32가구 2백6명 주민들의 생활양식은 물론 풍습까지 옛모습 그대로다.
현대문명이 인간생활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지만 이 산간오지의 마을은 외부와 고림된채 현대문명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다.
주택은 대부분 너와집이다. 통나무로 모서리(귀)를 맞춰 쌓은후 서까래위에 너와쪽을 얹고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덮은것. 방안 한구석에는 벽을 움푹파고 관솔불을 지펴 조명과 난방을 겸하는「코클」이 태고의 정취를 퐁긴다.
굴피집은 민속자료로 보존되고 있는 삼척용리의 「너와집」을 비롯, 산간벽지에 개량형이 한두채씩 있지만 이 마을에는 집단적인 촌락형태로 존속되고있다.
주민들은 영농외에 약초재배와 양봉·산송이·산나물등을 채취, 생활한다.
천수답에서 약간의 벼농사도 것지만 주로 산비탈에 불을 질러 개간한 화전에 강냉이·콩·감자등 잡곡을 부쳐 식탐을 자급자족하고 있다.
영농은 가축과 손쟁기에 의존하고 시비도 퇴비만 사용하고있다. 추수한 곡식도 집집마다 디딜방아와 절구로 찧어낸다. 화전밭 3천평에 당귀·강활·지모등 3개종의 약초를 재배해 연간 6천근을 생산한다.
여기다 1백통에서 2백되 (4백ℓ)에 이르는 토종꿀을 떠 2천만원의 소득을 울리고 있다.
주민들은 약초와 토산품을 80리 떨어진 주문진이나 강를에 내다팔아 필요한 생필품을 조달해 쓰고 때로는 서로 물물교환을 한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명주와 삼베천은 정교하기로 이름나 있다.
영농이 시작된 요즘도 집집마다 마무리 길쌈의 물레소리가 요란하다.
주민들의 풍습도 이색적. 마을엔 조상전래의 엄격한 자체규율이 있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죄를 지면 전체회의를 열어 가차없이 추방한다. 또 매년 음력3월초 사흘 삼짇날과 9월, 11월 3차례에 서남제를 올린다. 토속신앙인 이 행사는 삼신에게 부락의 무사안녕을 비는 제례로 전체주민이 참석, 농악등 각종 민속놀이도 결들여 지내고 있다.
이 마을이 옛모습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은 외부와의 거의 완전한 단절 때문. 태백준령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데다 유일한 길목인 전후(전후)재는 60리길이 모두 경사 50도로 험해 나들이가 어렵다. 이같은 자연조건때문에 외부와의 교류가 사실상 불가능한 처지다.
전후재는 내리막과 오르막이 똑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젊은이들도 통행이 힘들어 역대군수도 고작 2번 방문했을 정도다.
현재는 지난 78년 명주군이 초벌로 닦아놓은 폭4까의 샛길이 뚫려 보행은 다소 빨라졌지만 차량통행은 안되고있다.
전체 주민중 3분의 1은 자동차를 못타보고 어린이들은 태반이 구경조차 못했다.
최돈희군(11)은 그림책에서 보아온 「버스」타고 서울구경하는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생활의 불편은 견딜수 있지만 애들의 교육이 문제입니다.』 마을 이장 홍순영씨(40)는 주민들의 교육열은 높지만 마을에는 국민학교분교 (연곡국교부연분교)밖에 없는데다 형편상 의지유학도 어려워 연장교육이 안되고있다고 했다.
간혹 여유가 있는 집은 중·고교에 진학을 시키기도 한다. 대학생은 촌락이 형성된 3백년 이래 작년에 백준기군(21)이 강원대토목공학과에 첫 진학했다.
자녀교육 때문인지 이마을 온주민들은 해마다 줄고있다. 5년전만해도 70가구에 달했으나 현재는 절반이상이 도시로 빠져나갔다.
이때문에 몇년전까지도 외부인을 배척해온 마을주민들은 최근부터 전임자에게는 집터를 제공하는등 각종특혜를 베풀며 오히려 환영하고 있다.
한편 명주군은 전국에서 유일한 원시마을인 이부락을 민속촌으로 지정, 보존할것을 검토중이다. <강릉=권혁용기자><사진=최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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