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의 난폭 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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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의 어느 고교 학생 50여 명이 자기네 학교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의자를 부수는 등 소동을 벌인 사건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소풍 길에 몰래 갖고 간 소주병을 인솔 교사들이 압수한 데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인근 가게에서 술을 사 마신 후 학교에 몰려가 그런 소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사건 자체는 전 청년기 학생들의 순발적인 반항, 또는 일시적인 탈선이라고 보아 넘길 수도 있지만, 근자 경향 각지에서 동종 사건들이 빈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의 비행 사건의 빈도가 급격히 늘고 그 경향도 거칠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 할 고교 학생들이 술을 못 먹게 했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로 바로 그들 자신의 배움의 터전을 난장만으로 만든 일은 어떠한 구실로도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나무라기에 앞서 고교 학생이란 특수 연령층에 대한 기성세대의 이해는 충분했는지 반성할 필요는 있으리라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 교육장의 문제점으로 중학생과 고등학생 사이에는 생리적·심리적 차이가 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를 충분히 고려에 넣지 못한 채 교과목의 편성에서부터 교칙, 학생을 다루는 방침, 처벌 방법까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다시 말해 고등학생은 그 발달 경도로 보아 청년기의 시작으로 대학생이나 일반 사회인의 그것에 접근하는 시절인 만큼 이를 단순히 중학 교육의 연장선상으로서만 취급하는데서 오는 모순이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을 해치고 정신적 부적응 상대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들은 어느 세대보다도 사회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고 주위의 분위기에 쉽게 동화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사회의 급격한 변화,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 등은 이 같은 청소년들의 심리적 특성과 상승 작용을 하여 청소년 문제는 한결 심각의 도를 더하게 되는 것이다.
기성인들의 눈엔 『이유 없는 반항』처럼 보일지 모르는 행동 양태가 학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극장 출입을 엄금하고, 이성 교제를 죄악시하며, 머리는 짧게 깎아야 하고, 어디서나 식별할 수 있게 이름표를 달고 다녀야 한다는 식의 고등학생들에 대한 행동 제약은 교육적인 면에서 차제에 신중히 재검토해 봄직하다. 고등학교를 중학 교육의 연장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대학 쪽으로 기울게 하는 전략이 강구되어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고등학생들에게 나름대로 독자적 가치관을 지닌 집단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그에 따른 자부심과 의무감도 길러 주는 것이 필요한 일일 것 같다.
오늘날 중· 고교 학생들의 비행이 늘고 포악화하는 경향 등은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다.
이 사회에 팽배한 이기주의· 쾌락주의·퇴폐 풍조 등을 방치한 채·청소년들에게만 착하게 살 것을 당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번에 일어난 것 같은 학교 유리창 파괴 등 난폭 행위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물론 근본적으로 전반적 사회 환경의 정화가 이룩되어야겠지만, 당장 긴요한 것은 청소년들의 「에너지」가 창조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도록 기성세대가 관심과 이해를 갖고 선도하는 노력일 것이다.
해서는 안될 행동에 관한 지시를 줄이고 그 대신 갖가지 「해 볼만 한 일」을 권장하고 그들의 활동 광장을 넓혀 주는데서 청소년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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