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가족」의 분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노사 문제를 당사자간의 자율에 맡긴다는 노동 정책의 실질적인 전환은 매우 올바른 판단이다.
노동청이 올해를 노동 문제 개혁의 해로 삼아, 유연한 자세로 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노동청은 최근의 노동 문제가 커다란 변환기에 접어들고 있어 당국의 일방적인 규제는 어려워지고 있다고 보고 노사 분규가 발생했을 때는 노사간에서 스스로 해결토록 한다는 것이다.
노동청으로서는 다만 노사 분규가 일어날 수 있는 소지를 줄이기 위해 우량 업체에 대해 근로 감독관의 출입을 금하고 체임 해소 대책을 마련하는 등의 업무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
그러한 노동 정책의 천명은 지난날의 노사 문제 개입이 관권을 동반한 고압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반성하고 개입도를 낮춤으로써 근로자나 사용자의 협조를 최대한으로 발휘토록 기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중동에 진출한 해외 건설 업체에서 몇 건의 소요가 있었으며 그 원인은 체불과 노사간의 대화 부족에 있었다고 고백한데서도 그 뜻을 엿볼 수 있다.
사실 노사 문제를 덮어놓고 위험시하고 있을 수 있는 쟁의를 누르려고만 하는 노동 정책이란 근본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노사 문제의 표면만을 호도 하여 더 줄기찬 내연을 조장하는 모순을 범하는 행정이라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노사간의 협력을 통해 기업운영을 줄기차게 끌어가도록 행정적 뒷받침만 하면 족한 것이며 우리의 근로자 의식 수준이나 사용자측의 양식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을 줄로 믿는다.
지난 몇년간 가장 심각한 노사 분규 지대였던 평화 시장 피복업계도 종전과는 다른 양태의 노동청 거중 조정을 받아 원만하게 수습된 것이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 한다.
현재 또 금융 노조를 비롯한 일부 노조가 임금 인상 요구를 하며 쟁의를 벌이고 있다고 하나 대립이 아닌 타협으로 매듭을 푸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둔다.
근로자로서는 최저 생계비 보장뿐만 아니라 이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당연하며 또 그래야만 노동력을 충실히 길러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작년 중에 일어난 노사 분규의 쟁점은 임금 인상 요구·근로 시간 단축 등이 주원인이었다는 데서도 근로자의 욕구 불만이 어디에 있는가를 읽을 수 있다.
이점을 이해하고 노사 문제에 임한다면 분규의 확산을 막을 수가 있다. 우리의 근로 환경은 서구의 계약 고용 형태와는 달리 종신 고용의 성격이 강하며 따라서 직장에 대한 귀속감이나 기업과의 일체감이 투철하다.
그러므로 기업의 번영이 곧 근로자의 복지 향상과 연결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몇개 문제 기업에서 심각한 노사 분규가 일고 종업원 추방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갔던 것이 어디에 기인했나를 깊이 되새겨보아야 한다.
대화와 협력을 구하는데 인색했고 거기에다 관권의 중압이 작용했던 데서 발단되지는 않았던가.
지금 국내외 경제 여건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진 채 호전되지를 않고 있다.
그만큼 기업 경영이나 가계 운영이 어려운 상태에 있다.
이 같은 난국을 헤쳐나가려면 그 어느 때보다도 노사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 특유의 기업 가족 분위기를 살려 어려움을 이기면서 새 시대를 맞는 새로운 노사 관계가 정립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