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항공기사고 1년… 생존자·유가족 고통의 나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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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죽음을 8개월 만에 알게된 할머니가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1년 동안 대책위 일을 보느라 직장도 잃었다.”

김해 중국 여객기 사고 희생자 가족대책위 배준형(37) 총무부장의 아픔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무역업을 하던 형(40)이 지난해 4월 15일 사고를 당한 뒤 그는 자연스레 대책위에 참여하게 됐다.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젊은 사람이 필요한 현실을 모른 척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군 대위로 예편한 그는 운수회사에서 일을 하다 형의 죽음을 맞았다.하지만 할머니(89)에게 형의 죽음을 올 초에 알렸다가 할머니마져 잃었다.형의 사망 사실을 들은 할머니는 충격으로 20여일 만에 돌아가신 것이다.그동안 배씨의 입장을 이해하던 직장에서는 요즘은 전화도 오지 않는다.

사고 발생 1년을 맞았지만 이처럼 김해 중국 여객기 사고 희생자 가족들과 생존자들의 고통은 끝이 없다.

배씨와 함께 대책위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최교웅(50) 사무국장도 숨진 장인·장모가 키우던 조카까지 떠 맡았다.

경북 영주지역 교장단 11가족과 함께 중국 여행을 갔던 장인·장모는 교통 사고로 숨진 자식의 아들(15)을 키우고 있었다.그도 대책위 일을 보느라 직장을 잃고 가족과 떨어져 김해시내서 여관생활을 하고 있다.

희생자 유골 1백8기는 창원 한마음 병원에 안치돼 있으나 지금까지 안치비 1억7천여만원을 한푼도 내지 못한 상태다.

생존자들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사고 항공기 보험사가 지난 1월 말 입원비 지불을 중단하는 바람에 그때까지 입원해 있던 15명이 모두 퇴원해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하지만 대부분 부상자들은 두통과 불면증을 호소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다.

사고때 살아 남아 승객 20여명을 구조해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의 영웅 25인’에 선정된 설익수(28·부산시 해운대구 반여동)씨는 아직도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여행사 직원으로 관광객을 인솔해 처음 중국을 다녀 오는 길이었던 그는 퇴원한 뒤 대구의 여행사를 그만두고 부인(26)·딸(1)과 함께 부산의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한 동안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생계가 막막했기 때문이다.

설씨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고소 공포증 때문에 아파트를 오르지 못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다”라고 하소연했다.

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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