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업그레이드 해주고 보험 들어주고 … 서비스로 크는 힐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어느 대형 건설현장 앞. 빨간 안전모를 쓰고 빨간 점퍼를 입은 사람이 빨간 픽업트럭에서 내린다. 흰 로고가 선명한 빨간 공구를 잔뜩 가져 온 이 사람은 ‘힐티맨’이다. 그는 작업 현장 곳곳을 꼼꼼히 살피고 현장 작업자와 한참 이야기를 나눈다. 장비를 어떻게 설치하고 사용해야 하는지 조언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야 제품(장비) 판매가 이뤄진다.

 글로벌 대형 건설장비 업체인 힐티의 동영상에 소개된 힐티가 제품을 파는 과정이다. 힐티는 1941년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 인접한 작은 입헌군주국 리히텐슈타인에서 마틴 힐티 형제가 창업한 소기업으로 출발했다. 공구와 건설장비 생산이 주력인 이 회사는 독특하게도 창업 초기부터 고객 밀착형 직접판매 방식을 고수했다. 지금은 건설·플랜트·조선소·원자력발전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 됐다. 세계 120개국에서 2만여 명의 직원이 건설 현장에 제품을 공급한다.

  작은 나라의 소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런 판매방식에서 비롯된 고객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이를 기반으로 혁신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힐티의 혁신은 한 마디로 제품을 파는 회사에서 서비스와 솔루션을 파는 회사로 전환한 것이다.

 어떤 유형의 소비자는 ‘제품 그 자체의 가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힐티 제품의 소비자인 건설업체가 대표적이다. 건설업체가 구입하는 건설장비는 고가이며, 구매시 상당액을 선불로 내야 한다. 또 도난을 방지하는 한편 작업 순서대로 배열될 수 있게 항상 재고 장비를 관리해야 한다. 자주 쓰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지 않을 수는 없는 초고가 장비를 몇 대씩 보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건설기계 생산을 핵심 사업으로 하던 힐티는 자사의 고객이 안고 있는 이런 문제에 집중했다. 그 결과 사업의 중심 축을 장비 판매에서 장비 관리 서비스로 확대했다. 기계를 대여하고,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장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또 건설업체의 장비를 가장 최신 기종으로 자동 업그레이드해 줬고, 장비 도난에 대비한 보험도 제공했다. 건설업체가 장비 관리 부담을 덜고, 오로지 공사라는 본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서비스의 편리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자 다른 업체로부터 장비를 구입했던 건설사도 하나둘 힐티의 고객이 됐다. 힐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경기 추락에도 최근 5년간 연평균 5%대의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안동순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파트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