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량한 여론조사는 위험" 박무익 한국갤럽조사연구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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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민적합의」「민심의 소재」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또 「대통령중심제」「내각책임제」「임기」「선거구역」 등 새로운 정치체제와 관련된 제도개선방안이 여론조사·공청회 등을 통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민주정치발전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필자는 우선「민의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방법으로 과학적인 여론조사가 선행되어야함을 지적하고 싶다.
영·미 등의 민주주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여론조사가 민주정치발전 과정에 불가결한 요소임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으며 주요 정책입안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미국 「갤럽」조사소에는 미국민의 전체 의사를 대표할 수 있는 표본을 추출한 여론조사가 매주 행해져서 보도기관에 발표되고 있으며 영국 「갤럽」조사소도 15일마다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어떤 때는 집권당에 불리하게 여겨지는 조사 결과를, 또 어떤 때는 야당이 싫어할 것 같은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작년 11월 우리나라를 방문한「갤럽」조사기구 국제사무총장「N·웨브」씨는 『여론조사야말로 민주정치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속시키는 원동력이며 여론조사의 실시를 기피하거나 발표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면 그곳엔 이미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는 정치지도자가 정당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편파적인 입장에 선 이해집단이나 「매스컴」이 민의와 반대되는 의견을 민의라고 주장하지 못하도룩 한다.
요즘 실시되고 있는 여론조사와 관련해 필자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 누구를 대상으로 조사하는가 하는 문제다.
조사대상자를 정치가, 학계, 대졸 혹은 고졸 이상의「엘리트」계층을 대상으로 하거나 편중해 조사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 인구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무학 내지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이 제외되거나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은 정치체제에 관한 장·단점을 잘 모를 것이라든가, 혹은 이들을 조사대상에서 제외시키더라도 「민의」는 파악될 수 있지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의 의견으로는 그런 조사에서 나온 결과는 진정한 「민의」라고 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기본은 대졸도 1표, 무학자도 1표이며 남녀도 각각 l표다. 우리나라의 역대선거를 되돌아 보더라도 이런 계층이 지식인보다 기권율이 낮았고 우리나라의 문맹율도 미국보다 낮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일 여론조사에서 의식수준이 낮다든가 정치제도에 관해서는 무지할 것이라 해 이들 말하지 않는 다수의 의견을 빼버린다면 그 결과는 전 국민의 뜻이 이 될 수 없다고 하겠다.
l936년 미국의 「리터러리·다이제스트」(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의 오류를 다시 저지르게 될 뿐이다(1천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A·E·랜던」이 「F·D·루스벨트」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승리 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61%:37%로 「루스벨트」의 승리였다. 이는 조사 대상자를 전화를 갖고 있거나 교육수준이 높은 계층만을 조사 대상층으로 한데서 온 결과였다) .
두번째로 여론조사의 정확성이 문제다. 조사나 통계가 정확하지 못하다면 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쁘고 위험하다.
가까운 예로 「수입고추」「돼지파동」이 그것이다. 조사는 그 진행과정의 단계마다 오차가 발생하며 수준 높은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엄격히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 발표되는 조사에는 지켜야 할 규범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약식 혹은 편의적 조사가 흔히 행해지고 있다.
수준높은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한 예를 들면 우리나라 전국을 대표하는 표본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할 경우 소요경비는 예외가 있겠으나 현재의 실정으로 약 3천만원 이상이 소요된다고 추정된다(표본오차 ±3%이내범위). 「갤럽」박사는 다음과 같은 조사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첫째, 전화로 조사된 것. 둘째, 질문지 우송에 의한조사. 셋째, 정당 혹은 관련단체가 조사한 것 (독립된 조사기관에서 조사되지 않은 것). 네째, 조사과정을 자세히 명기하지 않거나 공개하지 않은 조사.
이제 「민의」가 어떤 측의 책략이나 주장에 두들겨 맞추어지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일부 계층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 지켜야 할 규범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조사를 「콜로스업」시키는 성급한 「저널리즘」에서 벗어나서 무엇이 「민의」 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길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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