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대 도약기틀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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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은 70년대에 들어 태권도·사격·연식정구·여자농구 등 7차례에 걸쳐 세계대회를 개최, 국제「스포츠」계에서 주역으로 등장한 것은 괄목할 성장이었다.
한국이 종주국으로 자부하고 있는 태권도는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 (73년5월25일∼27일) 를 한국 「스포츠」사상 처음 서울국기원에서 개최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대회엔 19개국 1백60여명이 출전, 한국이 8개 전체급을 모두 석권함으로써 위력을 과시했다.
특히 세계연맹 창립총회에서 대한태권도협회 김운룡회장이 만장일치로 총재에 추대된 것이나 세계연맹본부를 서울에 영구히 둔다고 결의, 태권도의 성가를 국제적으로 크게 각광을 받게 됐다.
이어 75년 제2회 세계선수권대회 (32개국 3백여명)와 78년「프리·월드게임」 (비 「올림픽」종목 예비세계대회)으로 태권도는 국제화에 박차를 가했고 김운룡총재는 지난 10월20일「모나코」에서 열린 비「올림픽」종목 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임, 한국인 「스포츠」관계자로서는 처음으로 국제기구의 장이 되는 「스포츠」위치를 확보하기도 했다.
또 안보「스포츠」로 역점을 두고있는 사격은 「아시아」제일의 태릉국제사격장 준공을 계기로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78년9월27일∼10월4일)를 동양에서 처음으로 개최, 71개국에서 1천여명의 선수단이 「스포츠」의 국제무대진출을 노리는 한국의 강한 힘을 체험하기도 했다.
또 79년8윌엔 제1회 세계공기총선수권대회 (26개국2백40명)를 벌여 사격한국의 위치를 공고히 했고 8윌 대구에서 제3회 세계연식정구선수권까지 열어 여자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경기수준향상과 함께 행정능력의 과시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화려하면서 관중동원에 성공한 것은 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79년4월29일∼5월13일 12개국). 신설된 2만관중을 수용하는 잠실종합체육관에서 벌어진 이 대회에는 6대주에서 12개국이 출전하여 한국은 미국·「캐나다」와 동률을 기록했으나 득실차에 의해 미국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농구는 세계선수권대회이면서도 「올림픽」을 전권을 부여하지 못하는 외교부재를 보였고 역시 사격과 함께 공산권이 모두 불참, 씁쓸한 여운을 남겨주어 80년대 「올림픽」 유치를 목표로 하는 한국「스포츠」계의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었다. <끝>

<이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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