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골든타임 5분 … 송파 4분10초, 무진장 12분26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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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트럭이 뒤집혀서 사람이 크게 다쳤어요. 빨리 좀 와줘요.”

 지난 4월 26일 경남의 한 소방서에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변모 소방교는 급하게 구급차에 올라탔다. 현장은 소방서에서 10㎞ 떨어진 곳으로 20분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변 소방교가 근무하는 곳은 흔히 말하는 ‘나홀로 지역대’다. 구급차 1대와 구급대원 1명, 그리고 의무소방원 2명이 전부다. 운전부터 응급처치까지 모든 게 변 소방교의 몫이다. 응급구조 자격이 없는 의무소방원은 업무 보조밖에 할 수 없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환자 상태가 심각했다. 응급처치를 마친 후 서둘러 병원으로 구급차를 몰았다. 10분쯤 달렸을 때 환자 옆에 대신 앉아 있던 의무소방원이 당황한 목소리로 운전 중인 변 소방교를 불렀다. “반장님, 환자 상태가 이상합니다.” 변 소방교가 손 쓸 겨를도 없이 환자는 구급차 안에서 숨졌다. 환자 가족들은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 응급처치를 제대로 받지 못해 숨진 것”이라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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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 상황 발생 시 초기 5분은 ‘골든타임’으로 불린다. 5분 동안의 응급 처치가 생사를가르기 때문이다. 특히 심정지 환자는 3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 소생률이 75%나 되지만 5분이 지나면 25%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한림대 성심병원 손유동(응급의학) 교수는 “골든타임이 지나버리면 말 그대로 백약이 무효인 경우가 많다”며 “뒤늦게 호흡이 돌아온다 해도 이미 뇌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본지가 지난해 발생한 전국 구급 출동 기록 218만 건을 입수해 ‘골든타임’ 준수율을 분석했다. ‘전국 화재 출동 소요 시간’ 보도(본지 5월 28일자 14면)에 이어 두 번째 골든타임 분석이다. 서울(4분22초)은 전 지역에서 구급차가 5분 안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제주도(5분49초)를 제외한 8개 도 단위 광역단체는 ‘골든타임’에서 한참 벗어났다.

화재 출동 때보다 촌각을 다투는 경우가 많은데도 출동 소요 시간은 오히려 구급 출동이 더 걸렸다. 화재 출동의 경우 서울(3분22초)과 부산, 대구, 대전 등 4개 지역에서 골든타임을 지켰지만 구급 출동은 서울만 골든타임을 지켰다.

 도착 소요 시간이 가장 긴 곳은 충남으로 평균 9분32초였다. 소방서별로 보면 서울 송파소방서가 평균 4분10초로 가장 빨랐고 충남 부여소방서가 13분17초로 가장 느렸다. 부여뿐만 아니라 충남지역 소방서 14곳 중 7곳이 현장 도착까지 10분 이상 걸렸다.

 도시의 경우 소방서가 촘촘하게 있어 ‘골든타임’ 내 도착률이 높다. 다만 교통난과 시민들의 비협조, 골목길 불법 주차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경기 분당소방서 정충실 소방교는 “ 심정지 환자를 이송하는데 교통체증 때문에 위험 했던 적이 많다” 고 말했다.

 농촌 지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전북 무진장소방서(12분26초)의 경우 관할 면적이 1954.41㎢로 서울시 전체 면적의 세 배가 넘는다. 하지만 1일 근무 구급대원은 19명, 구급차는 8대뿐이다. 서울은 구급차 142대를 운용중이다. 지방 재정 부족 탓이 크다. 인력 부족은 구급 서비스의 질에도 영향을 끼친다. 충남 서천소방서 오인도 소방사는 “중증 외상 환자의 경우 주사도 놓고, 지혈도 하고, 부상 확인도 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제대로 처치를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 구급 서비스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선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경일대 공하성(소방방재학) 교수는 “골든타임은 현장이 2㎞ 반경 내에 있을 때 달성할 수 있다”며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이나 특별세 마련 등 중앙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석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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