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가사, 매혹적 멜로디 … 누구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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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앨범 ‘이상기후’를 통해 거대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식에 대해 노래한 신예 밴드 ‘쏜애플’. 왼쪽부터 한승찬(24·기타), 윤성현, 심재현(27·베이스), 방요셉(24·드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이키델릭 록밴드 ‘쏜애플(Thorn apple)’은 냉랭한 공기 위에 가장 뜨거운 말을 토해낸다. 뾰족하게 날이 선 목소리, 낯설지만 매혹적인 멜로디, 같은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잘 조율된 연주까지. 우리가 신인밴드에 기대할 수 있는 패기와 살기, 그 모든 것을 갖췄다. 게다가 새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거대한 세계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살아남기’다. 세계의 끝에서 생존을 노래하는 이들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 2집 ‘이상기후’를 발표한 밴드를 만났다. 2010년에 나온 1집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이후 4년 만이다. 앨범을 내놓자마자 멤버들이 군입대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2집이 프로 밴드로서 출사표다. 세상이 얼마나 힘들기에 ‘생존’이 주제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전곡을 작사, 작곡한 윤성현(28·보컬·기타)이 진지한 낯빛으로 말했다.

 “여기서 생존은 투쟁적인 의미가 아니에요. 알베르 카뮈가 말하는 실존주의에 더 가깝죠. 사람들이 삶에 대해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잖아요. 저는 의미를 찾기보다도 그저 살아있음, 그 자체의 반짝반짝임에 주목했어요.”

 특히 멤버 모두 20대이기에 생존은 더 절실한 문제라고 했다. 성현은 “20대가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은 학력·스펙·배경·인맥 같은 도구적인 것이다.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는 자기 소외가 만연한 현실에 화두를 던졌다”고 했다.

 10곡이 수록된 새 앨범은 한 곡, 한 곡이 간단치 않다. ‘시퍼런 봄’이나 타이틀곡 ‘낯선 열대’는 드라마틱한 전개가 돋보이는 대중적인 곡이지만 ‘암실’ ‘살아있는 너의 밤’은 예민한 심성으로 직조한 실험적인 노래다.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가사도 인상적이다. 좋은 시가 그렇듯, 날카로운 언어가 즐비하지만 세계를 향한 연민의 태도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새빨갛게 흐드러진 해 질 무렵 공기/하루만큼 늙어버린 사람들의 냄새/무엇보다 숨을 참기 힘든 이 세계를/분명 나는, 좋아한다 생각해’(아지랑이)

 ‘ 어차피 지구에선 모두 외톨이, 나를 구해줘요 따윈 모두 헛소리. 서로서로 잡아먹는 짐승의 놀이. 알면서도 계속하는 나는 멍청이’(백치)

 반면 멜로디는 귀에 착착 감긴다. 소위 말하는 ‘뽕끼’가 있어서다. 성현은 ‘파’와 ‘시’가 빠진 음계, 즉 펜타토닉 음계에 끌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펜타토닉성애자’라고 불렀다. 서구음악과 동양적인 음률의 간극이 커보이지만 그것이 쏜애플이 추구하는 이율배반의 음악이다.

 “쏜애플은 가시박힌 사과란 뜻이에요. 일종의 선악과인데, 인간이 선악과를 베어 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삶은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잖아요. 그 모순적인 부분이 좋고 그게 저희 음악에도 투영됐으면 좋겠어요.”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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