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최경환 경제팀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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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논설위원

최경환 형. 나 박근혜 정부 1기 경제팀장, Y입니다. 우선 미안하단 말을 전합니다. 안 좋은 경제, 태산 같은 숙제를 떠넘기는 듯해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최형, 너무 나쁘게만 생각 마십시오. 전임이 못날수록 후임이 빛나기 쉽다잖습니까. 기회라고 여기십시오. 짐을 넘기고 떠나는 마당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만, 꼭 세 가지만 당부하렵니다. 해야 할 일 세 가지이자,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이기도 합니다. 최형이 익히 아는 얘기겠지만 부디 일독을 권합니다.

 첫째 ‘부동산 살리기’입니다. 1기 팀이 발동은 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체감온도는 미지근합니다. 연초 살아날 듯하던 시장은 다시 얼어붙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소비 심리도 다시 꺾였습니다. 이걸 다시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입니다. 취임 전부터 최형은 “부동산 경기 회복”을 외쳤습니다. 이런 결연한 각오니 어련히 알아서 잘할 겁니다. 시장도 최형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최형의 말마따나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히는” 식의 정책은 시정돼야 합니다. 분양가 상한제 등 집값 폭등기 때 만들어졌지만 아직 남아있는 규제들, 바로잡아야 합니다. 다주택자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아예 2주택 소유를 권장하는 방식으로 바꿔 나가는 것도 고려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하지 마십시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입니다. 1000조원 넘는 가계 빚 문제가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남아있습니다. 부동산을 살린다는 핑계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다시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물론 최형의 입장도 고려해야겠지요. 취임 전부터, 또 청문회에서 해놓은 말이 있으니, 시늉은 내십시오. 신혼부부 등 앞으로 소득이 늘어날 사람들에겐 DTI 규제를 약간 낮춰주는 식의 ‘합리적 조정’만 하는 겁니다.

 둘째는 추가경정예산입니다. 최형은 “당장은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현재 경제 상황만 보면 추경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많은 경제 전망기관들은 올해 성장 전망을 줄줄이 낮추고 있습니다. 세수도 예상보다 부진합니다. 필요하면 추경, 하십시오. “나름 생각한 방법도 있다”고 했으니 여당의 원내대표를 지낸 최형이라면 정치적 반대와 논란을 뚫고 추경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추경을 하더라도, 세출을 늘리는 식은 안 됩니다. 우리 1기 팀이 관료팀이라면 최형의 2기 팀은 정치팀입니다. 세출 추경을 밀어붙였다간 ‘2기 팀의 출범=건전재정 포기’라는 식으로 시장이 오해할 수 있습니다. 추경을 하되, 세입을 줄이는 감액세입추경을 하십시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세입 예산도 부풀려 짜였습니다. 이걸 바로잡는 겁니다. 게다가 세수 부족도 심각합니다. 이대로 가면 올해 국세만 10조원 넘게 부족할 전망입니다. 자칫 하반기엔 세수가 모자라 재정 절벽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세무당국이 적극 노력하면 되잖냐고요? 지난해 국세청이 거둔 노력 세수는 3조원 정도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중소·중견기업들의 원망과 아우성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전임자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마십시오.

 셋째, 인사 잘하십시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장관이 바뀌면, 차관 이하 간부들도 바꿔줘야 합니다. 1기 팀은 인사가 없어도 너무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기획재정부는 현 정부 출범 후 승진 인사가 전무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겠습니까. 승진인사는커녕 비어있거나 보임도 못한 국·과장 자리가 기재부에만 십수 개입니다. 자타 공인의 힘 있는 2기 팀인 만큼 소신껏 밀린 인사를 하십시오. 윗분 눈치를 보느라 인사 적체·지연되지 않게 하십시오.

 그렇다고 치우친 인사는 마십시오. 벌써부터 위스콘신 대학 인사, 연세대 인사 소리가 나옵니다. 특정 지연·혈연·학연 인사는 곤란합니다. 능력 있는 인재를 제때 찾아 쓰는 데 무엇보다,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쓰십시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