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여신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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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운용이 항상 신중해야한다는 것은 한번 잘못된 시책이 오랫동안 후유증을 일으켜 경제운용과정에 커다란 부담과 손실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 경제운용에 있어 예측기능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주장이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도 정책집행과정이 언제나 세 가지 시간적인 지체성을 내포하고 있어 정책효과가 사실변화에 뒷북을 치기 때문이다.
오늘의 경제동향을 판단컨대 경제운용에 신중성을 잃었던 여파가 너무나 클 뿐만 아니라 정책판단의 지체와 정책입안의 지체로 말미암아 적기에 정책적으로 대응치 못함으로써 경제현실에 대해서 이렇다할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강구하기 힘들게 되어있는 것 같다.
그 때문에 안정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키도 어려운 상황인 반면, 산업계의 진행중인 투자를 매듭짓도록 자금을 제대로 공급하기도 어려운 「샌드위치」상황이 되고 말았다.
자금공급에 어떤 결단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금동원방법을 개선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국제수지는 계속 악화되고 순외화자산도 위험스러울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국제수지개선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이 강구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 국내여신한도 운용상황도 그러한 예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 9윌 말까지에 이미 연간 여신한도증가계획의 86%를 소진시켜 4·4분기 중에는 3천5백억원 밖에 자금을 공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금년 민간여신한도는 2조5천5백억원인데 이미 9윌 말까지 2조2천억원이나 나가 남은 3개월 동안에 3천5백억원으로 버티어야만 금년 재정안정계획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추곡수매자금을 위시해서 중화학지원 수해복구 등 자금수요는 연말까지 9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므로 어떤 방법으로든지 간에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만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이러한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서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나갈 방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수년간 선택할 경제정책의 큰 테두리를 먼저 잡고 그 테두리에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으로서 현실정책을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책판단 기준을 그렇게 잡고서 당면시책을 평가한다면 먼저 연말까지는 불가피하게 조성된 현실에 정책이 순응해서 자금을 방출하는 수밖에 또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긴급한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경제순환이 막히는 것을 우선 풀어주는 한편으로 80년부터는 자금수요의 본원적인 원천이라 할 개발계획 내지 투자계획을 극력 보수적으로 짜야할 것이다. 투자계획을 극력 보수적으로 편성해서 자금수요의 원천을 눌러 놓으면 시일이 흐름에 따라서 자연적으로 자금수요압박도 완화되어갈 것이다.
투자계획이 보수화되는 이상 자금수요가 완화되면서 수입수요압력이 완화되어 국제수지의 악화경향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완화경향이 구체적으로 나타날 때 적기에 수출신장에 필요한 약간의 자극을 가해준다면 큰 테두리의 애로는 풀려나갈 수 있게될 것이다.
요컨대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원칙을 고수하는 것도 아닌 방법으로 사태를 풀어나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현실을 인정하고 장기적으로는 원칙에 접근하는 정책자세가 불가피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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