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한국인들-그들의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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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본사 창간 14돌 기념 특별기획 의식조사>
약 30만명에 달하는 재미교포중 이 조사에는 39개 주요도시 및 그 외곽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 2천1백92명이 무작위 추출되어 그 중 1천6명이 두 차례에 걸친 우편설문에 응답했고 1백55명이 전화「인터뷰」에 응했다. 본사 오택섭 박사(이사)가 주관한 이 조사는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실시되었고 유장희·이재원·신의항·김광정 박사와 「로런스·골드버그」박사 등 재미전문가들이 참가했다.<편집자주>

<영어실력과 참여는 함수관계>
재미한국인들의 사회활동과 참여의식을 이해하는데는 우선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언어가 전혀 다른 나라에서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만큼 이 나라말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한인과 그렇지 못한 한인과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의 응답자들 중 영어 때문에 불편을 많이 느낀다는 사람이 30%에 이르고 「유창하지는 않지만 생활에 불편이 없다」고 대답한 47%의 사람들 가운데에도 자유응답란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데 대한 고충을 털어놓은 사람이 상당한 숫자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절반이상의 재미교포들이 미국식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기에는 의사소통과정에서 오는 불편을 너무 크게 겪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회활동의 길이란 오로지 한인으로만 구성된 사회가 대상이 될 뿐이다.
이에 비해 영어를 불편 없이 구사하거나(18%) 그런 대로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들(47%)의 경우는 미국인사회나, 한국인사회 혹은 둘 다 참여할 여지가 있다.

<결속력 없는 단체가 수두룩>
이들 중에 미국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가끔 나가면서 한인들이 모이는 곳엔 전혀 안나간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16%, 한국인사회에는 가끔 나가지만 미국인 모임에는 전혀 안나간다는 사람들도 20%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케이스」에는 시간이 없어서 못나간다는 공통적인 이유이외에 다른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미국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전혀 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가 가나, 영어를 잘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어떤 이는 한국사람을 전혀 안 만나고, 또 어떤 이는 미국사람을 전혀 안 만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어를 못하면서도 한국사람을 전혀 안 만난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그 이유로서 한인들이「너무 잘난체 들 한다」, 남을 존중할 줄 모른다」,「뭘 여러 가지 캐묻는다」,「남의 말을 너무 한다」,「거짓말이 많다」,「만날 필요가 없다」등을 들고있는데 이는 열등의식·피해의식·상호불신의 복합으로 풀이 할 수 있다.
상호불신이나 피해의식 등은 대개 이질적 인간들이 결속력 없는 사회에 투입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사회심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미국의 한인사회에는 그동안 직업이나 계층에 있어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투입되어 왔다. 전직장관도 왔는가하면 「양공주」들도 수입되어 왔다. 게다가 한인회라든지, 한인실업인협회, 상공인연합회 등은 법률적·정치적으로 아무런 결속력이 없는 단체다.
한인회장이 경찰권이 있다든지 한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행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질적 인간들이 결속력 없는 사회에 투입된 것이다.
재미한인교회를 보면 더욱 그렇다. 교회에 전직장관이나 의사들만 오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받으려고 가지각색의 한인들이 집합한다. 바로 이질적 인간들의 집합체다.

<조그만 마을에 한국인교회 셋>
그러나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마다 믿음의 정도나 그 양식이 각자 다를 수 있다. 목사나 신부라 해도 이들을 획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무기가 없다. 결속력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인사회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합집산이 무상하다 .한 지역에 두개의 한인회가 있는가 하면 조그마한 마을에 한인교회가 셋이나 되는 곳도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경우만 해도 한인교회가 2백50여개로 한인을 15만명으로 잡으면 6백여명에 교회가 하나씩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교포 중 기독교도는 대충60%이므로 실재로는 3백60명에 교회가 하나씩 있는 꼴이다.
이들은 갈라질 때마다 모함과 욕지거리를 뿌린다. 그것이 「하늘보고 침 뱉기」인 건 말할 것 없다.
그것도 부족해서 시비를 분간해 달라고 미국판사 앞으로 쫓아간다. 이런 것들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해있는, 긍지를 가져야 했을 「한인사회」를 눈물을 머금고 등지는 것이다.

<말은 통하지만 찬 눈초리 싫어>
영어로 의사소통에 큰 지장이 없으면서도 미국인들과 전혀 교류가 없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화제에 한계점이 있다」,「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해서 사고방식에 너무 차이가 많다」, 「백인들의 차가운 눈초리가 싫다」, 「조크가 서로 달라서 재미가 없다」등을 들고있다.
영어가 유창한 사람들 중에서도 미국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친밀감을 갖는다고 한 사람은 33%에 지나지 않고 별로 친밀감을 갖지 못한다(11%), 경우에 따라 다르다(56%)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생활의 고충이 「인종차별」이라고 응답한 사람들 중 58%가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는 사람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인과 교류한다고 해서 그 사회에 잘 적응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자를 미국의 한인사회, 후자를 한인의 미국사회참여로 굳이 재정리해 본다면 재미한국인들의 사회생활은 그 규율에 있어서나, 주어진 상황에서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이 더 많은 것 같다.
통계가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다른 아름다운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른 이민에 비해 비교적 교육수준이 높은 한국인인 만큼 개인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맺으며 동고하고 혹은 동락하며 작은 규모의 한인사회를 키워나가고 있는 많은 인사들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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