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세상읽기

한·중 관계 지나치게 낙관하는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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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강일구]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지난주 중국 시진핑 주석이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기에는 한·중 관계에 긴장이 조성됐기 때문에 중국과 업무 관계(working relationship)를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박 대통령은 ‘이전의 상태(status quo ante)’의 복원이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청와대는 한·중 관계가 역사상 최고가 됐다는 것을 뽐낼 만하다.

 한국 국민은 한·중 관계의 상승 기류를 지지하고 있다. 한·중 정상회담 전 아산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중국은 경쟁국이 아니라 협력 파트너’라는 응답이 60.8%였다.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고 수치였다. 70.8%는 양국 관계가 앞으로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부에서 보기엔 한국 정부와 국민의 중국관은 역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낙관적이다. 미국·호주·일본·인도·동남아의 여론조사에선 자국과 중국 관계의 미래에 대한 믿음은 추락하고 있다. 해양 영토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힘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관리들은 한국을 중국에 “빼앗긴다”는 우려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근 자신의 새로운 유라시아 안보 구상에 서울을 끌어들이려고 한 시진핑의 서툰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국의 이런 견해는 한·미 양국 간의 긴밀한 업무 관계, 그리고 한국 국민은 역사적으로 한·미 동맹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또 대미(對美) 호감도는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인 대중(對中) 호감도보다 훨씬 높다.

 많은 아시아 국가가 중국이 자국의 안보 환경을 악화시킨다고 보는 것과 달리 한국인들은 중국이 한국이 처한 안보 상황을 개선할 가능성에 대해 기대를 걸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조사에서 82%의 응답자들은 한반도 통일을 위해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중국 관리들과 전문가들은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장성택 처형 이후 평양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변화가 ‘전술적’이었지 ‘전략적’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시진핑은 김정은을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중 관계는 위축됐다. 북한의 도발로 6자회담에 대한 중국의 믿음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6자회담으로 복귀하게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다음 단계에 대한 중국의 다른 생각은 없다.

 현재로선 통일이라는 장기적 이슈에서 베이징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시진핑은 중국이 ‘자주적인’ 한반도 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는 통일과정에서 남북의 상호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가설 차원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단계 통일 방안과도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하지만 북한이 불안정 상태나 붕괴에 직면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 경우 남북 상호 합의에 나설 수 있는 세력이 북한에 있을까. 없다면 중국은 서울 주도의 통일에 동의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아니다’이다.

 가까운 미래에 위기 상황이 전개된다면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것인가. 아산정책연구원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0.9%만이 전쟁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을 도울 것이라고 대답했다. 2012년 조사에서 나온 75.9%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다. 중국의 정책은 변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시각이 크게 바뀐 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시진핑-박근혜 관계의 향상과 시진핑-김정은 관계의 악화뿐이다. 북·중 안보 조약과 북·중 군부 간의 연대는 아직 유효하다. 만약 북한이 단독으로 한국이나 미국을 공격한다면 논리적으로는 베이징이 옆으로 물러서 평양이 응징을 당하도록 놔두는 게 맞다. 하지만 보다 혼탁한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북한에 내전이 발생할 수도 있고 북한 내 급변 사태에 한국이 빨려들어갈 수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의 국가이익과 북·중 연대를 감안하면 중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통일을 방해할 수도 있고 노골적으로 평양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다.

 지금으로선 베이징이 한국의 이익과 부합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비무장지대 이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태에 대한 대부분의 시나리오에서 그렇다. 일부 시나리오에 따르면 베이징이 한국의 정책 목표에 적극적으로 반대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이 중국에 대한 균형 잡히고 현실주의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하지만 한국이 한·중 관계의 개선 자체를 중단할 이유는 없다. 언젠가는 중국의 대북 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면 최근 중국 내 한 여론조사에서 중국인 응답자의 32%는 중국이 무력으로 북한을 ‘민주화’시켜야 한다고 대답했다.

 신중한 외교 전략은 제3자가 단기적으로 무엇을 할 것이며 장기적으로 제3자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를 따져야 한다. 만약 서울이 중국의 한반도 접근법에 영향을 주고 싶다면 베이징에 ‘구애’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중국이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한국인의 신뢰를 얻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는 한국이 전방위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과 한쪽 외교 라인에만 공들이고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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