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성실한 삶의 자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역사의 기조는 고집이었다. 어느 시대를 조감해 보아도 거기에는 혼돈과 취식이 있었으며 때로는 암흑과 절망이 지배했다.
그러나 역사는 연면히 이어오고 우리는 오늘을 영위하고 있다. 혼돈의 심저엔 그래도 질서의 흐름이 있었으며 어두움 속에서도 한줄기 빚의 명맥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소망은 도리어 희망의 시작이었다.
바로 그런 역사의 주인공은 법률도 제도도 아니며 물질의 힘도 아니었다. 한국사의 주인공은 한국인, 우리 자신이었다. 이 한국인은 한국 민족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다. 그런 우리 민족은 수천년 역사를 통해 남다른 시련과 질곡을 체험했다.
그러나 어두운 역사의 축적 속에서도 소감하기 보다는 오히려 줄기차게 뻗어왔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비장한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역사가중엔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덕목을 막대·박애·예의·염결·자존 등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대저 우리 역사의 눈부신 장들은 이들 덕목이 저마다 빛을 내며 국민적 이중으로 교연을 이룰 때였으며, 어둠의 장들은 그들이 지리멸렬 할 때였다.
세계사를 펼쳐 보아도 예외는 없다. 1620년 1백 여명의 유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상륙한 「아메리카」대륙은 꿀과 젖이 흐르는 복지는 아니었다. 「뉴잉글랜드」의 가혹한 자연환경, 열악한 생활기술 등은 첫겨울을 넘기면서 질병과 가난, 그리고 「인디언」의 외침을 불러들여 반수 이상의 사람들로부터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이들에겐 신념과 의지가 있었다. 개인의 양심과 인격·영혼을 존중하고 그 주체인 각개인의 가치와 의의와 생명을 귀히 여기는 「퓨리터니즘」이 그것이다.
자조정신·전심과 견인·근면과 정직, 열의와 용기. 이런 미덕들은 삶의 뿌리가 되었으며, 그런 삶은 경건과 장엄, 강건과 신뢰, 그것이었다.
이런 역사의 교훈들은 새삼 한 사회의 진보는 개인의 근면·성실·덕행의 총화이며, 그 애퇴는 개인의 나태 (나태) 사심 및 악덕의 결과인 것을 웅변하고 있다.
흔히 법률이나 제도의 힘을 과신하려는 경향도 없지 않지만 한 인간이나 사회의 발전은 그 성패들의 성행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은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 일상생활의 성행가운데 하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검소의 정신을 들 수 있다. 절제는 남다른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 같지만 실상은 올바른 관리·절도·신중 그리고 낭비의 억제를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검소는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착실한 심부름꾼으로 부리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생활자세야말로 인격과 가정의 행복과 사회의 고지를 약속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낭비와 무절제와 요행주의는 선행할 수 있는 수단과 극기의 능력과 도덕적인 품성을 빼앗아가며, 마침내는 내일에의 희망마저 잃어버린 천박한 인생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최근 중앙 「매스컴」이 창립기념 특유의 하나로 실시한 전국생활의식조사의 결과는 이런 관점에서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가난 속에서도 근검과 절제를 생활의 신조로 삼고 저마다 성실하게 살려는 자세를 의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 안식하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미래를 뚫고 나가려는 그 어기찬 모습은 새삼 우리의 내일을 투시할 수 있게 한다.
오늘을 이끌어 가는 모든 지도자들은 바로 이들의 기대와 의지를 꺾고 실망을 안겨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실로 오늘의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이들을 격려하고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복돋워주는 신뢰와 정직인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