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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해외여행요? 돈 안 쓰니 이야기 무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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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힘바족 마을을 방문한 박수(가운데)씨. 머리를 앞으로 땋으면 여자아이, 뒤로 땋으면 남자아이다. 힘바족은 햇볕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빨간 돌을 갈아서 몸에 바른다. [사진 박수]

“여행도 돈으로 안 되는 게 없어요. 버스 끊기면 택시 타면 되고. 그런데 돈을 안 쓰니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1월 초부터 521일간 아시아·아프리카·동유럽 36개국을 배낭여행 한 박수(33)씨의 여행 철학이다.

 연세대 물리학과 00학번인 박씨는 과외 입소문이 나면서 20대 후반에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사업 투자 실패로 수천만원의 빚을 졌다. 전단지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하면서 빚을 갚아 나갔다. 그때 그는 ‘다음에 돈을 벌면 나를 위해 써보자’는 결심을 했다. 전 세계 배낭여행에 나선 계기다.

 처음에는 관광지를 돌아보고 저렴한 숙소를 찾아 묵는 식이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그는 처음으로 호스텔이 아닌 직접 친 텐트에서 잤다. “현지인 집에 무작정 들어가서 5달러 줄 테니 마당에 텐트치고 자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결국 그 집 딸과 친해져서 딸의 친구들과 자전거 하이킹도 다녀왔죠. 돈을 안 쓰면 이야기가 생기더라고요.” 이후 숙박은 현지에서 부딪히면서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이스라엘에서는 텐트 대신 카우치서핑에 도전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갈 때 일본인을 사귀었는데 그가 친구집에서 잔다는 거예요. 저도 따라가서 잤어요. 그게 첫 카우치서핑이에요.” 문화교류의 이점이 많은 만큼 여행자와 현지인 모두 카우치서핑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카우치서핑 웹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찾았다. 이스라엘에서 체코까지 120일간 숙박비로 단 15만원만 썼다. 이 중 터키부터 헝가리·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체코까지 76일간은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했다.

 “유럽은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터키에서 연습 삼아 첫 히치하이킹을 시작했어요. 2시간씩 기다리기도 했는데 자꾸 해보니깐 요령도 생겼어요. 속도가 줄어드는 오르막길이나 신호등에 서있으면 확률이 높아지더라고요.” 5545㎞에 이르는 거리를 이동하는데 교통비는 12만원(항공비 제외)이 채 안들었다.

 그가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불확실한 여정을 즐길 줄 알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땐 누구 아들, 누구 남자친구, 누구 선생님이라는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에 확실한 계획이 서 있어야만 했어요. 지금은 불확실한 삶 앞에서 두려움보다 설레는 마음이 더 커요.”

 박씨는 9월 결혼식을 위해 중도 귀국했다. 결혼식을 마치면 신혼여행을 겸해 배낭여행을 이어갈 생각이다. 현지에서 카우치서핑이나 히치하이킹에 도전할 경우 숙박비나 교통비 일부를 모아 현지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 기부할 예정이다. 그가 여행길에 만난 한국인 여행자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돈 많이 모으셨나 봐요?”였다. 박씨가 답변을 내놓았다. “여행에서 돈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길 위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즐길 줄 아는 게 더 중요해요.”

위문희 기자

박수씨의 여행 블로그 http://blog.naver.com/qkrtn137

◆카우치서핑=여행자가 잠잘 수 있는 현지인의 ‘소파(couch)’를 ‘찾아다니는 것(surfing)’을 뜻하는 말. 인터넷 커뮤니티(www.couchsurfing.org)와 페이스북을 통해 숙박정보가 교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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