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와 자기확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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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방34주, 정부건립31주를 맞는 올래 광복절엔 우리자신의 내적인 자기확립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본래 해방이니 주류확립이니하는 명제 자체가 평면적인 개념이 아니라 포괄적인 개념이다.
침해받지않는 주권, 견실한 국민경제, 강력한 국방력, 건전한 사회풍토-이런 모든 것이 골고루 내포되어있는 상태가 다름아닌 해방인 것이다.
여기에 한가지 더 중요한 요소를 첨가한다면 그것은 바로 흔들림없는 나의 마음, 우리 마음을 확립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튼튼한 기층문화의 저력을 강화하자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인데, 우리의 「해방34년」이 결여하는 가장 큰 것이 아마 이점일 것이다.
해방후 우리는 고금동서와 내외의 온갖 영향력과 맞닥뜨려 일대 정신적 혼란과 문화적 충격을 받아왔다.
전통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 서구적인 것과 동방적인 것, 국내적인 요인과 국제적인 요인, 이런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바람에 무수한 방황과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이다.
생각하면 『정신없이 살아온 한 세대』라고나 할까, 미처 무엇이 무엇인지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채 이리쏠리고 저리 밀리면서 숨가쁘게 뛰어온 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아직도 우리의 정신상황은 차분한 정돈이 아쉽다.
전통은 있으나 제대로 재구성되고 확립돼 있지 못하다. 외래사조는 많이 들어왔으나 주체적으로 여과되고 비판적으로 수용되지 못하였다.
고도산업사회를 지향해왔으면서도 우리의 「멘탤리티」와 행동양식은 서구적인 합리주의에 철저히 숙달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동양적인 공동체규범에 투철한 것도 아니다.
근대화와 산업화, 민족주의와 고유문화가 동시에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데, 「옛」과 「지금」, 우리의 것과 모든이의 것, 욕망과 수분이 하나의 높은 구심점에 차분히 수렴되어있지 못하다.
이러한 문화적 구심력의 미숙은 자연 우리의 공공생활과 그 운용과정에 적잖은 누수현상과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현상을 흔히 과도기적 불가피성이라 자위해 왔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것이 언제까지나 잠정적이거나 과도기적인 것일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주권을 회복하고 독립국가의 시민이 된지도 이제 벌써 한세대가 흘렀다. 한 세대라면 하나의 자연인이 청소년기를 지나 완전한 어른이 되는 세월이다. 우리는 과연 이 기간을 통해 얼마나 어른이 되었으며 얼마나 어른스러워졌는가.
해방후의 혼란과 국토분단, 6·25의 참극과 60∼70년대의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는 한 민족과 개인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겪었다. 이제는 이 모든 방황과 시행착오와 수확에 바탕하여 완전한 성년 한국인으로서의 어른스러운 줏대를 완성할 차례다. 잠정적이고 과도기적인 삶에서, 균형있고 틀잡힌 삶의 본체를 확립해야하는 때다.
남의 사조와 새로운 풍조를 접할 때에도 휩쓸리지 않는 줏대를 견지하고, 옛것과 우리 것을 기리더라도 완고하지 앉은 진취성을 발휘하며, 욕망하는 중에서 수분할줄 아는 통합역량을 키우는 것.
이것이 8·15에 자기할 우리자신의 정신적 성년의언이요, 자기확립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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