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고시의 공신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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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인회계사 공개경쟁시험의 문제유출시비는 응시자들이 집단농성을 벌이고 법원에 시험정지가처분신청을 내는등 심상찮은 사회분규로까지 확대되었다.
시험시행기관인 재무부는 시험문제가 사전유출됐다는 응시자들의 주장을 일축하고 시험강행방침을 밝히면서도 유출여부의 수사를 의뢰했다는것이다.
유출여부는 수사 결과 밝혀지겠지만, 우리는 유출여부를 떠나 이 문제가 국가고시의 공신력에 관계되는 중대사라는 점을 중시하자는 것이다.
한 사회의 유지와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의심받지 앉고 도전받을수없는 최소한·최저한의 공리가 있어야 한다. 이 공리가 무너지거나 동요한다면 이를 기반으로하는 모든 제도와 관계가 무너지고 흔들릴 것이다.
사회의 기본되는 이같은 공리는 권력의 강제로 일조에 수준이 올라갈수 있는 것도 아니요, 경제성장에의해 급격히 향상되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 사회의 생존양식과 전망, 문화풍토 등에서 형성되고 오랜 세월의 축적으로만 발전할 수 있다.
공개경쟁시험이란 제도도 모든 응시자들이 평등한 조건에서 실력의 경쟁을 통해 당락을 가린다는 지극히 당연한 공리위에 존립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제유출시비가 터진것은 이런 공리가 혼들린 것이요, 더구나 그것이 국가의 공신력과도 관련된다는 점에서 더욱더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재무부는 우선 응시자의 불신과 일단의 의혹을 푸는데 주력하여야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1천3백여명의 응시자중 6백명이 시험을 「보이코트」했다면 우선 시험강행 방침보다는 응시자들이 납득할만한 방법으로 시험을 새로 실시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했어야 할것이다.
그리고 응시자들의 주장에서 드러났다시피 출제한 일부 교수들의 직업윤리와 각대학간의 과잉경쟁에도 문제가 없지않다. 문제된 일부출제위원이 과연 시험문제를 사전유출시켰는지 여부는 알수 없지만 그들이 『유출할수도 있는 사람』으로 의심받게 된것부터가 불행한 일이다.
교수에 대한 이런 의심까지 가능케 만든 것이 일부 대학간의 과열경쟁풍토라 할수 있다.
각종 국가시험에 자대학출신의 합격자수를 늘리기위해 우수한 타대학출신을 좋은 조건으로 자대학의 대학원에 입학시키는 따위의 경쟁상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이번사건도 바로 이같은 과열경쟁을 한 배경으로 하곤있다.
겅쟁에 이기기 위해 원칙을 소홀히하는 풍토가 다른 곳도 아닌 바로 대학에서, 그리고 더욱이 국가고시에서 만연되고 있다면 이것은 중대한 문제라고 보지 않을수 없다.
이런 여러가지 관점에서 보면 이번 문제유출시비는 실은 우리사회의 본질적문제와 관련되는 요소를 깊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어늘 이사건을 계기로 관련당사자들은 정리하고 개선해야 할점이 무엇인지 깊은 성찰이 있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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