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예산의 긴축기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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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도 재정계획의 수립은 여느때 보다 더욱 신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 석유가의 대폭 인상으로 모든 국내경제변수가 깊은 혼돈에 빠져있는데다 기업이나 가계의 투자·소비전망조차 전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경기나 수출시장, 심지어 통화정세까지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그야말로 불확실한 싯점에 서있다.
이런 중첩된 불확정 요인들을 헤쳐내고 그 속에 난마처럼 얽혀든 실마리를 찾아 풀어내는 일은 바로 재정이 맡아해야할 역할이다.
유가파동의 수습은 전국민적인 관심사이나 결국은 재정운영의 큰 줄기에 따라 수습의 맥락이 찾아져야한다는 것이다. 이점 내년 예산의 방향과 내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새해 재정이 해결해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안정과 성장의 조화라는 추상적이며 손에 잡히지 않는 정책이념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이며 시간을 늦출 수 없는 유류파동의 수습이 되어야할 것이다.
유례없는 「에너지」파동의 위격파를 최소한의 희생과 고통으로 저지하기 위해 재정이 무엇을 해야하며 무엇을 하지 않아야할 것인가를 깊이 검토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견되는 성장·투자·수출의 둔화와 이에 따른 경기후퇴, 고용기회의 감소, 소득의 저하를 우선 먼저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에너지」파동의 1차적 후유증에 대해 고전적으로 대처할 수만 있다면 문제해결은 간단하다. 적자예산을 편성하더라도 과감하게 정부와 민간투자를 늘리고 수출의 지원도 확대하여 경기자극을 도모하는 방편이 채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 수년동안 지적되어온 확대정책의 결과 「인플레」요인이 누적됨으로써 초과수요의 압력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에너지」파동을 계기로 누적된 압력이 분출되고 있는 싯점에서 추가적인 수요마력을 창조하는 일은 거의 금기에 속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재정은 이런 때일수록 반 「인플레」정책의 기조를 강화함으로써 충격의 완충효과를 극대화하고, 일파만파의 「인플레」파급을 최소범위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내년재정의 기조를 긴축예산으로 고수해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새해 재정에 새로운 부담요인이 될 예산단가의 상승이나 공무원처우개선, 국방비부담의 증가압력등 지출측면까지 고려한다면 긴축과 절제의 강도는 지금까지 보다 훨씬 높아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재정의 환경과 현실적인 과제에 비추어 볼때 결국 새해예산은 생산성의 극대화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당위에 도달한다. 단가의 상승이나 처우개선이 일반경비의 경직적인 확대로 연동되거나 투자와 정책자금의 수요가 신축성있게 조절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긴축재정이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때 보다도 신중하게 모든 세출항목을 점검하고, 소비성경비는 물론 국방비나 투자사업까지 파감하게 깎고 줄이고 이월할 여지가 없는지 찾아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유류파동에 따른 민생의 파탄을 어떻게 재정에서 보전할 것인지도 충분히 검토되어야한다.
생필품과 공공요금등 사회의 기본수요를 어떻게 보강장 것인지는 물론 기초소득보장을 위해 소득세와 부가세·특별소비세등 조세체계 조정을 통한 재분배기능을 최대한 반영하는 일은 새해 재정의 가장 긴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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