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암거래가 관례…유괴가능성은 언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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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골동상 부부의 이번 실종사건은 골동가 생리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서울의 골동가에는 계획적인 유괴의 가능성이 항시 잠재돼 있으며 또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상식 이상의 모험심에 젖어있다고 할만하다.
작년 가을에도 유괴살해사건이 있었다. 서울의 여관방에 묵고있던 전주의 골동상 양순석씨가 좋은 물건 보러가자는 꾐에 끌려갔다가 강남에서 살해됐다. 현장을 배회하는 젊은이를 잡고보니 범인이었고 바로 양씨와 지면이 있는 자였다. 그는 심지어 상가로 찾아가 미망인을 위로하며 밤샘까지 했었다.
골동가에서 평생을 살아온 원로들은 그런 경험을 한두번씩 겪었다. 지방에서 좋은 물건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가 돈을 다 털리고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쳐 나왔다는 얘기가 흔하다. 도굴배와의 현장거래는 현찰로만 이루어지고 또 다른 상품보다 단위가 크기 때문에 그런 위험성이 언제나 잠재돼 있기 마련이다.
골동가의 유통은 공식거래보다 암거래의 성격이 짙다. 물건의 출처와 행선지를 서로 공개하려 하지 않으며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신분 밝히기를 꺼리는 것이 관습화 돼있다.
골동점포는 법의 규정대로 한다면 골동이란 모두 고물이므로 물건을 사고 팔때마다 고객의 주소·성명·주민등륵번호를 장부에 명기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 장부가 철저하게 비치돼 있는 점포는 거의 없다. 만약 이것을 따지려 하면 점포 운영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점포를 가진 골동상들은 당국의 허가를 받고 고미술상협회에 등록돼있다. 각 회원점포에는 준회원이란 명목으로 뜨내기 상인(가이다시)들이 몇 명씩 딸려있다.
이들은 점원이 아니라 물건을 공급해주거나 거래알선을 하는 무점포 상인으로 그 수는 협회정회원의 2∼3배로 추정되고 있다.
이밖에 또 다른 상인층이 있다. 협회의 정회원도 준회원도 아니지만 가정에서 보이지 않게 거래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골동계의 퇴역원로이거나 정통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큰 거래는 오히려 이들이 맡아 해낸다는 소문이다. 골동거래의 거점은 반드시 점포만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근래에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편이다. 물건을 가진 측에서 전화로 귀띔하면 상인으로서는 달려가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면 또 다른 소장자의 가정으로 안내될 수 있고 혹은 도굴현장으로까지 이끌려 갈 수도 있다.
이때 물건 공급처에 대한 독점력 때문에 행선지를 밝히지 않는 게 상례.
때로는 부정품에 대한 모험심과 한목 회재하려는 욕심 때문에 어떤 위험도 감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면서 물건은 언제나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 하고 개개의 물건값은「케이스·바이·케이스」로 처리되며 특히 현찰일 때 한층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실종된 금당 사장 정씨의 경우, 65년 개업한 이래 민화로만 성공한 골동상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는 도자기 거래로써 돈을 벌었다고 인사동 골동품상들은 말한다. 그는 돈을 가지고 물건을 사러가지 않으며 반드시 선배상인과 상의하는 편이라고 주위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번에 그는 행선지 내지 물건에 대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떠났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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