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욕망 설성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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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거정의「골계전」에 이런 얘기가 있다.
아내를 무서워하는 한 대장이 두 깃대를 세워놓고 부하들에게『아내를 무서워하는 자는 붉은
기쪽에 서고 아내를 무서워하지않는 자는 푸른기쪽에 서라』고 명령했더니 모두 붉은 기로 가능
데 오직 한 사람만 푸른 기 밑으로 갔다. 대장은 그를 장하게 여겨 참대장부라 칭찬하며 자기는
꼼짝없이 부인의 압제를 받는데 어떻게 그 경지에 도달했는지를 물었다.
그는『아내가 늘 남자 셋이 모이면 반드시 여색얘기를 하니 셋 이상이 모인데는 절대 가지 말
라했으므로 그 뜻을 따랐다』고 했다.
이는 약삭스런 부하와 우직한 부하, 대장의 현실판단에 나타난 허와 실을 말해주고 있다.
고속「버스」에서 느끼는 감정을 이와 관련해 생각해 본다.
절반정도의 청·장년 승객은 일간지나 주간지를 들고 승차한다. 선택된 잡지는 교양위주의 것
보다는 「풀리처」시대의 소위「옐로·저널리즘」이 지향하던 선정적내용이 주류임이 표지에서
이미 확인된다. 이들은 파한으로 애욕과 소유욕에 얽힌 결연과 파경의 진전과 벼락부자의 성패담
을 탐독하지만, 이 세대를 끌어가는 주인공의 읽을거리의 선택수준이란데 생각이 미치면 가슴은
한결 무거워진다. 물론 독서공해를 벗어난 사람도 많지만….
이 밀폐된 공간의 답답함과는 달리, 차창밖에는 짙푸른 6월의 밝은 태양이 비추는 성숙의 계절
이 있다. 산뜻이 단장한 취락구조개선 마을이 산을 등지고 앉은 모습은 어둠에서 벗어나는 80녀
대의 밝은 발돋움을 대변한다. 그러나 한참을 보고있으면 주택에얽힌 상황도밝지만은않은것같다.
단층, 2층의 지나치게 밝은 원색의 단장은 짙은 화장으로 참 아름다움을 잃게하는 화장의 미숙
성과도 통한다. 농촌은 밝은 색감에 의해, 어둠에서 벗어난 새 아침의 분위기를 노출하려 하지만,
총체적 생활개선과 벽촌까지의 확대가 있기전에는 농가간, 농촌간의 격차에서 오는 갈등은 완전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농촌에서만은 수년만에, 개량주택의 셋방살이로 전락하는 어제의 초가주인
이 생기지 말았으면 한다. 한 마을이 일시에 헐리는 요란스런 고속화의 개량보다는 10년후에도
지속되는 조용한 개량이 되었으면 한다. 안으로부터 영글어오는 알찬 변화만이 향대로성 주택의
노출증의 그늘에서 고민하는 소수농민을 낳지않을 것이다.
농촌의 개혁이 떠나간 자식들의 귀향을 돋우는 환희의 손짓이 되면 애욕과 치부욕의 얘기를 읽
는 자녀를 싣고 떠났던 고속「버스」도, 아침의 햇무리를 보며 노부모를 찾아 돌아오는 반가운
사람들을 실은 고속「버스」로 화할 것이다.
빛을 두려워하는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융자금을 마다하고 초가를 헐지 못하게 하는 푸른 기
밑의 현대판 아내무섬장이의 의식에는 화려한 새 주택에의 미련이 진정 사라질 것인가.

<계명대교수·국문학>▲경북대구출생▲연세대국어국문학과졸업▲논문『동창춘향가의 생성적
의미』『관념적 삶과 그 공감의지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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