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얽힌 한·불상담|박대통령 방불초청장에 담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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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스카르」「프랑스」대통령의 박정희대통령 방불「초청장」속에는 무엇보다도 경제문제를
터놓고 얘기해보자는「지스카르」의 의도가 분명히 담겨있는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유럽」의회총선와중에서 김종필대통령특사를 만날시간이 없다고 난색을 보였던「지스카르」
가「수드로」한불경제협력위원장 등의 조언에 마음을 바꿨다는 후문만으로도 이같은 추측은 가능
하다.
김특사에게 한국의 대「프랑스」교역태도를 대놓고 불평했다든가, 한국의 핵발전시설구매문제
에 「비상한」관심을 보였던 점들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한다.
「지스카르」가 76년「바르」당시교역상을「프랑스」각료로서는 처음으로 파한했던것은「프랑
스」의 서울·평양등거리외교 포기와함께 한국지지를 전세계에 선언하는 구실을 했지만「프랑
스」로서는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에의 참여라는 경제적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프랑스」는 한국의 핵발전소 3, 4, 5, 6호기 낙찰에 실패했다. 이후「프랑스」는「파
리」에 진출한 한국상사들의 현지 법인설립을 엄격히 규제하기 시작했으며 기존상사들에 대해서
도 「프랑스」상품의 대한수출량을「체크」하고 나섰다.
73년 당시 재무상이던 「지스카르」와 김종필전총리와의 회담, 한국의 「프랑스」여객기 6대도
입과 일부 무기수입 결정을 계기로 개막됐던 한불협력에 불협화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방위산업·중공업 등을 겨냥, 77, 78년에「프랑스」의 모든산업을 샅샅이 훑어
봤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싼 것을 사는 것이 무역상식이다. 그러나 경제협력문제를 떠나 정치협력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이같은 단순논리가 적용안될수도 있다.
74년「지스카르」대통령당선후 「프랑스」가「드골」「퐁피두」시대의 한반도정책을 수정,
「유엔」에서 친한쪽으로 선회했던 사실을 상기해둘 필요가있다.
「지스카르」의 대한반도 정책이 북한의 대구주경제공동체(EEC)진출 저지라는 한국의 대서구
외교정책에 큰 힘이 되고 있는 것도 부인하기 힘든 대목이다.
현싯점에서 한불간에 걸려있는 문제중의 하나가 원자력발전소 7, 8호기 문제인것은부정할수없
다.
이 문제에 관한한「프랑스」는 파는쪽, 한국은 사는쪽이라 한국이 유리한「카드」를 잡고있음
은 틀림없다. 그러나 소·동구의 대한국관계 개선에대한「프랑스」의 무게있는 역할을 고려할때
「지스카르」에게 더 유리한「카드」가있다고볼수도있다.
박대통령이「지스카르」의 초청을 수락한다면 그시기는 분명 81년이전이 될 것이다. 「지스카
르」의 임기가 81년에 끝나고 이해에「프랑스」대통령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파리=주섭일특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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