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양천 8개고 연합동아리 … 과학고 못잖은 해부실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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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서울 강서구 명덕여고에서 연합동아리 ‘SLP(생명탐구프로그램)’ 소속 학생들이 돼지 콩팥을 해부하고 있다. 덕원중 한성문 과학교사가 초청돼 학생들을 지도했다. [김성룡 기자]

서울 강서구 명덕여고 2층 과학실에서 학생 30여 명이 흰색 가운을 입고 실험 장갑을 낀 채 앉아 있었다. 이들은 강서고·경복여고·명덕여고·목동고·신목고·진명여고·양천고·한가람고 학생들로 구성된 연합동아리 ‘SLP’(생명탐구프로그램) 회원이었다. 의학·약학 및 생명과학 분야에 진학하려는 상위권 학생을 위해 8개 학교 진학교사 모임인 ‘강서·양천진학협의회’가 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협의회가 초빙한 한성문(덕원중·과학) 교사가 지난 4월 3일 명덕여고에서 돼지 콩팥 해부 실습을 진행했다. “혈관을 따라 세로로 자르라”는 설명에 따라 유아정(한가람고 2년)양이 어른 주먹만 한 콩팥을 잡고 유혜지(신목고 2년)양이 메스로 검붉은 혈관을 갈랐다. 2인 1조 해부 실습 뒤에는 ‘콩즙의 요소 분해효소를 확인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학생들은 스스로 실험을 설계·진행했고 결과를 놓고 토론했다.

 SLP 회원들은 올 1학기 60시간 동안 유전자감식법 실험, 유전공학·생명과학과 교수 특강, 1박2일의 과학캠프 등에 참여했다. 의대에 진학한 선배들의 조언도 들었다. 이런 활동은 협의회 교사들이 주선했다. 의대 진학을 꿈꾸는 손현수(강서고 2년)군은 “학원에서도 못하는 경험을 학교에서 하니 특목고가 부럽지 않다”며 “ 활동을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담을 수 있어 대입에도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발족한 협의회는 연합동아리·강좌로 각종 탐구활동, 수준별 강의를 제공한다. 강서고 황병원 진학팀장은 “학교끼리 힘을 합치니 학교·학생 부담은 덜면서 다채로운 활동이 가능하다”며 “학교가 주도하는 활동이라 학생부에도 담을 수 있어 대입에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일부 일반고는 동아리와 교내 경시대회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자동봉진(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의 대입 반영이 늘어나는 흐름에 맞춰 ‘특목고·자사고 따라잡기’ 차원이다.

 반면 대다수 일반고는 변화에 둔감하다. 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대입에 외부 스펙 반영이 금지되면서 교내 활동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실제 프로그램은 학교·지역에 따라 격차가 크다”며 “학생 개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학교에 따라 결정되는 측면이 많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특목고에서 서울 일반고로 옮겨 고3 담임으로 일하는 A교사는 “일반고는 탐구·학습 동아리가 너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A씨가 재직하는 B고엔 36개 동아리가 운영 중인데 영어신문 읽기 등 5개를 빼면 댄스·연극·영화·만화·농구·축구·하이킹·문화탐방 등 모두 ‘문예체(文藝體)’ 분야다. 이공계 지망 학생이 실험·실습을 경험할 과학 동아리, 인문계 우수 학생이 선호하는 경영·금융 분야 동아리는 아예 없다.

 서울교육청 진학진로지원단 김혜남(서울 문일고) 교사는 “특목고 학생의 학생부는 대개 수상 기록만 2장, 동아리·체험활동은 4~5장이나 된다”며 “반면 일반고 학생은 성적이 우수해도 진학하려는 전공과 연관된 교내 활동이 거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체계적이지 못한 동아리 운영도 문제다. 서울 관악구 C고의 특별활동 담당교사는 “보고서·발표물 등 활동 결과를 남겨야 입시에 도움이 될 텐데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글=천인성·신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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