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로 잃은 모처럼의 행복-15년만에 재 수감된 두 딸의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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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기를 낳으라고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던 한 시골여인이 법에 대한 무지 때문에 교도소에 되돌아가지 않고 15년간을 살아오다 끈질기게 뒤쫓은 수사관에게 붙들려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졸지에 고아신세가 된 두딸 미숙(15)·민희(10)양 자매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지난 10일 서울 구치소에 떠밀려 들어간 김형선 여인(40·경남 통영군 사량면)은 15년전인 64년8월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라디오」1대를 훔친 혐의로 검거되어 절도죄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었다.
당시 임신6개월의 무거운 몸으로 서울 서대문 교도소(현 서울구치소)에서 4개월간 복역한 김 여인은 출산 일이 다가오자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석방돼 병원에서 지금의 큰딸 미숙양을 낳았다.
미숙양을 안고 병원을 나섰을 때 김 여인은 복역 중 남편 송모씨(당시 군 복무 중)가 말없이 집을 나간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김 여인의 출산 2개월 후 검찰은 재수감을 결정했으나 김 여인은 아기를 낳으라고 풀어준 것을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된 줄로만 잘못 알고 갓난 미숙양을 업고 살길을 찾아 나섰다. 서울·부산 등지에서 가정부일·식당 주방의 설거지 일을 했으며 노동판에서 손이 부르트게 막일도 했다.
돈을 모아 부산에서 조그만 대폿집을 차린 김 여인은 새 남편 왕모씨를 만나 둘째딸 민희양을 낳았다.
그러나 얼마 후 사기꾼에게 걸려 술집을 날렸고 왕씨마저 떠나버려 김 여인은 다시 두 딸을 데리고 고생길에 나서야만 했다.
77년 8월 김 여인은 충무에서 뱃길로 1시간 30분 거리인 통영군 사량도에 정착, 6평정도의 잡화가게를 차렸다. 비록 생활은 어려웠지만 틈 나는 대로 이웃 아이들을 모아 노래와 글을 가르쳤기 때문에 7백여명의 섬 주민들로부터 「고마운 가게 아줌마」로 불릴 정도로 인심도 얻었다.
한푼 두푼 모아 두 딸의 진학을 위해 1백만원짜리 적금도 들었다. 아버지 없는 두 딸과의 생활은 가난 속에서도 행복한 나날이었다.
김 여인 집에 다시 찾아든 평화는 소문을 추적, 끈질기게 따라붙은 수사관에 의해 지난 9일 깨졌다. 수사관의 옷깃을 붙잡고 울부짖는 세 모녀의 호소에 수사관은 머리를 돌렸다.
서울까지 엄마를 따라 갔다가 돌아온 두 딸은 이웃 주민들의 도움으로 매일 학교에는 가고 있으나 책을 잡아도 눈물로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김 여인이 나머지 형기를 마치려면 내년 5월까지 기다려야한다.
현대적 의미의 형벌은 지은 죄에 대한 응징이라는 개념보다는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려는 교도와 예방적 효과에 큰 뜻이 있다. 재야 법조계 인사들은 이런 점을 들어 김 여인의 경우 무지가 빚은 결과일 뿐이며 그 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그녀를 다시 교도소에 보내는 것이 형사 정책상 최선의 방법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충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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