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내리는 학술계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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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학술계간지들이 적지않은 독자를 꾸준히 끌어모아 우리나라에도 「엘리트」잡지가 정착하는 조짐을 보이고있다. 학술「저널」중 가장 가능성을 크게 보이고 있는것이 금년 봄호로 창간2주년을 맞은 『현장과 인식』이다. 지난77년4월 뜻을 같이하는 몇몇 교수들이 사회과학동인지를 낼것에 합의, 출발한 이잡지는 처음의 회의적인 의견을 뒤엎고 3천∼4천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이잡지를 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편집동인들은 오세철(연세대·경영학) 박동환(연세대·철학) 박영신(연세대·사회학) 진덕규(이화여대·정치학) 임철규교수등 소장학자들. 제각기 전공분야를 달리하면서도 종합적인 안목을 갖고자 한데모였다. 이잡지의 운영에는 어려움도 적지않았던듯 처음에는 대학및 대학원생·동료교수들을 회원으로 묶어 재정의 일부를 메웠다고. 그러나 이제는 서점에서 팔리는 붓수도 상당해『한고비는 넘긴 것 같다』는 오교수의 얘기다.
주로 사보는 독자는 대학 고학년이나 대학원생등으로 한정돼있으나 최근들어 독자층이 점차 확산되어 가고있는 것 같다는 서점가의 얘기.
그것은 내용 편집에 있어 종합 학문적인 성격을 띠고있는데다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밝히는데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힘입고있다.
특히 여타의 학술지와 달리 「저널」적인 성격을 살려 매호 특집을 꾸며 관계학자들의 분석을 싣고있는게 특징이다.
지금까지의 특집제목을 일별하면 이잡지의「저널」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창간호의「현대사회과학의 구조적 반성」을 비롯해 「역사인식과 한국사」「한국철학의 새로운 저류들」「문학이론과 사상의 재인식」「한국사회의 근대적 변동」「사회과학의 인간주의적 접근-문제와 반성」「후기산업사회와 인간의 문제」「대중사회와 대중문화에 대한 이론적전개」 「식민지시대 민족운동의 다차원적 인식」등.
우리학계가 당면한 문제와 새로운 학계의 흐름을 어느정도 엿볼수 있도록 꾸며지고 있다.
이와는 성격을 달리하면서 꾸준히 14집을 펴낸 『한국학보』도 학술「저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주로 한국사·국문학·민속학· 한국철학등 국학에 관련된 논문을 모아 내는 이잡지는 「저널」이라기 보다는 학회지에 더 가깝다는게 중편. 그래서 독자층도 전문학계인사들로 매우 한정돼 있어 지금은 적자운영을 면치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것」을 알고자하는 한국학「붐」에 힘입어 꾸준히 독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편집위원은 김구식 (서울대·국문학) 신용하 (서울대·사회학) 윤병석(인하대·국사학)교수등.
자연과학분야에 있어서도 이같은 「저널」에의 바람은 크다. 각기 세분된 전문분야를 종합시켜주고 새로운 학술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미국에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과학발전에도 크게 기여한『사이언티픽·아메리컨』지 수준의 과학「저널」창간에 학계는 기대를 걸고있다.『사이언티픽· 아메리컨』의 한국어판을 내려는 노력은 몇차례 있었다.
첫번째 시도는 지난해봄 전파과학사(대표 손영수)가 했고, 이어 지난해말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를 중심으로 홍릉과학단지가 맡으려고 했다는 것. 그러나 「합작투자」를 해야 한다는 미국측의 까다로운 주문에 「손익계산」에도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이미 일본에서 9년전에 창간, 성공을 거둔 일본판의 전래도 있고 금년5월로 통권 458호를 기록하고 있는 『과학조일』과『자연』지가 일본과학계에 끼치고있는 영향력을 생각할때 우리나라에서도 수준높은 「과학잡지」의 발간은 바람직하다고 현원면씨(과학평론가)는 기대한다.
이밖에도 똑같이 21집을 기륵, 꾸준히 나오는 전문학술「저널」로 들수있는 것에 『퇴계학보』(퇴계학 연구원)와 『어문연구』(일조각 발행)도 있다. 그러나 이들 잡지는 퇴계학연구와 국학혼용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대변지라는 점에서 순수학술 「저널」과는 거리가 있다.
이처럼 학술「저널」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것은 『창작과 비평』『문학과 지성』『세계의 문학』등 문학계간지가 주도한 새로운 고급독자층의 개발과 무관하지 않다고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연세대 이상회교수(신문방송학)는 이같은 현상을 『종전의 대중지나 중간잡지에 눌려있던 「엘리트」지가 우리나라에서도 각광을 받기 시작한 증거』라면서 앞으로 이들 학술지가 더욱 폭넓은 독자층을 얻기위해서는 「고답적인 자세」를 탈피, 어려운 내용이라도 쉽게 풀어쓰는 필자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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