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경제의 신중상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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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마닐라」에서 개막된 제5차 「유엔」무역개발회의는 이전의 어떤 회의보다도 더 다양한 갖가지
문제들을 토론하고 제안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처해진 상황으로는 어느때보다도 제안의 실
현성이나 효과적인 결실의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번 「나이로비」회의는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석유파동 이후 선·후진국간의 이해대립이 날카
로와진 시기여서 자원의 무기화와 대원 「내셔널리즘」의 추세가 고조되는 시대였다. 이런 국제환경
은 필연적으로 이해「그룹」간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분화시키고 주로 논의되는 주제의 성격도 일
반논이거나 정치적 주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합의나 결론에 도달한「이슈」들도 대부
분이 개도국의 선진국에 대한 주장·요구의 형태로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마닐라」회의도 그 기본흐름에서는 지난번 「나이로비」와 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초년대
최대의 경제「이슈」로 등장한 남북문제는 한치의 진전도 개선도 없이「그룹」마다 제각기, 심지
어는 같은 「그룹」안에서도 자국의 이빈초청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선진국은 오랜 불황과「인플레」의 협곡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채 6월의 동경정상회담을 기대
하고 있으며 개도국들은 또 그 나름으로 점증하는 보호주의와 무역침체로 국제수지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번 회의의 생산성과도 연관될 이런 상황 때문에 회의의 성과 자체도 가변적일 수밖에 없을 것
이다. 특히 남쪽의 제안과 요구를 수용해야할 선진국들의 이해조정이 채 끝나지 않은 싯점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회의가 다루어야할 주제나 제안의 형태는 지난 회의처럼 포념적이고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현재 의제로 제기되어있는 다양한
주제들은 모두가 개도국의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것들이나 가장 비중을 두고 논의해야 할
주제는 아마도 선진국의 보호주의추세와 수년래의 과제로 남아 있는 1차 산품기금창설문제가 아
닌가 싶다.
전자의 경우는 개도국의 개별적 노력으로는 거의 대응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선진국들의 보호주의 강화는 결국 그들의 국내경제실패를 후진국·개발도상국의 희생으로 전가하
려는 발상이므로 이번 회의에서 철저하게 규명되고 공동의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합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선진국은 남북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원조가 아닌 무역에서의 협조가 진정한 호혜주의
임을 인식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자유무역을 고창하면서 비교열위산업까지 보호의 장벽으로 감싸고 있는 현재의 선진국정책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누적일 따름이다. 개도국의 공업화를 저지하면서까지 자국의 산업조정을 미루어 나갈
경우 선진경제의 핵율은 급속도로 저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차 산품기금조성문제는 아직도 개도국 「그룹」안에서조차 이해가 엇갈리고 있으나 그것이 기금
이든 미국식의 국제자원은행이든 ,세계자원의 안정공급을 확보하고 생산국의 기초소득을 적절히
보상할 수 있는 이해의 합치점이 이번 회의에서 모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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