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자료를 믿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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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검찰의 추궁에 은행장들은 숨을 죽였다. 『은행 부조리에 칼을 대겠다』며 검찰이 4개 은행장을 수술대위에 올려놓자 이들은 금융 부조리의 실체를 하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철야로 진행된 조사에서 50대의 은행장들은 『율산은 안 무너질 줄 알았다』 『젊은 기업인을 살려보겠다는 생각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며 『금융계와 국민들에게 죄스럽다』고 했다.
수사 관계자는 소환된 은행장들이 율산에 대한 특혜 금융을 대체로 시인하면서도 현 금융체제가 은행의 자율성이 약화된 관치 금융 체제임을 지적, 변태 금융 결과를 은행인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은 억울하다고 항변했다고 전했다.
홍함표 검사는 『지난해 9월 율산 「그룹」이 최고로 자금 압박을 받을 때 홍윤섭씨가 앞장서 시중 은행을 끌어들여 무담보로 율산 「그룹」에 특혜 금융을 해준 것은 금융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 홍씨에 대한 배임 혐의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서울신탁은 홍윤섭씨는 『자금 지원으로 율산을 살릴 수 있다고만 보았지 대기업 율산이 그렇게 쉽사리 무너질 줄 몰랐다』며 배임 부분에 대해 부인했다.
이동안 다른 전 은행장들도 조사가 각각 진행됐으나 대부분의 전 은행장들은 『주거래 은행인 서울신탁은행장 홍씨 개인에 대한 신뢰와 홍씨가 제공한 신용 조사서를 그대로 믿고 율산에 무담보 신용 대출을 해주게 된 것』이라고 실토, 서울신탁은행이 율산 「그룹」의 금융 특혜에 주도적 역할을 했음을 주장했다.
홍씨는 하오 8시쯤 『주거래 은행장으로서 부실한 신용 자료를 믿고 거액을 신용 대출했으며 젊은 기업인을 살려보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고 배임 부분에 대해 시인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율산 부정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동원된 인원은 국세청·은행감독원 등을 포함, 연 1천1백명에 달했다.
지난달 20일 치안 본부 특수대가 수사에 착수한 이래 지금까지 조사를 받은 은행 관계 직원·감독 관청 공무원 등은 1백여명에 이른다.
그동안 검찰은 전문가가 아닌 한 도저히 알 수 없는 차원 높은 경제수사를 하느라 너무 벅찬감도 있었으며 수사를 급전직하로 일단락 짓느라 형사 처벌 범위가 미진한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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