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의 처형으로 하크정권이 흔들린다|부토전수상 처형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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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파키스탄」군사정권의「지아·울-하크」대통령이「부토」 및 현「부토」세력의 정계복귀를 완전히 배제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토」처형의 이유는 74년「부토」가 정적「카수리」라는 사람을 암살토록 지령했다는 혐의지만「하크」가 77년7월「쿠데타」직후「부토」와 만나 당시「파키스탄」정치소요 해결을 위해 타협을 시도했던 사실로 미루어 당초엔「부토」를 제거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처음부터「하크」의「쿠데타」가 불법임을 주장한「부토」는 계속 총선에 의한 정계복귀를 선언했었다.
「부토」는 재야세력의 비난을 샀고「쿠데타」에의해 축출됐으나 출신지역인「신드」생과「파키스탄」최대의 요충인「푼잡」지방에서 농민을 위시한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런 사실은「파키스탄」군사정부에 위협적인 요소였다.
「하크」의「부토」제거결심은 앞으로의「파키스탄」통치에는 반「부토」정책의 도입이 필요했던 국내의 정치·경제·사회적 배경에도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크」는 먼저 경제난국타개를 위해 1960년대의 부흥을 재현시키겠다면서「부토」가 단행했던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또 자주노선을 선언하여「부토」의 친중공·친미정책에 쐐기를박는 한편「이슬람」의 질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부토」의「카리스마」적「이미지」를 깎아내려 그의 지지기반을 제거하지 않고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려운 사정때문이었다.「하크」정권은「부토」체포이후 계속 이러한 정치적 작업을 벌여오다 그의 처형을 단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부토」처형으로 다시 일고있는 소요는「하크」정권을위협하고 있다.
첫째「푼잡」생과 다른 3개 생간의 이해·감정충돌로인한 국민간의 의견분열, 둘째 회교종파인「수니」파와「시아」파간의 종교적 갈등 및 충돌과 종교의 정치도입을 반대하는 국내정치세력간의 의견차이, 셋째 자유경제체제에의 추구에도불구하고 외국투자가들이「부토」처형이후의 정치불안을 이유로 투자를 기피하고있는 것은「하크」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내문제다.
여기에다「파키스탄」과 접경한「아프가니스탄」내「시아」파회교도 폭동을 둘러싼 두 나라간의 관계악화와「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접경지역의「바루치스탄」자치문제도「하크」가 당면한 어려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은 친소「아프가니스탄」을 경유해서「파키스탄」에 소련세력이 자리잡을 것을 크게 우려하여 우선적으로「파키스탄」정타의 안정을 위해서는「부토」의 구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하크」의 반동적인 군사독재정권은 나라안팎에서 일고있던「부토」구명호소를 들은채않고 백주에 잔악한 정치살인을 자행했다. 그렇게 해서 정적한사람은 제거되었다. 그러나「하크」의 군복은「부토」가 흘린피로 더렵혀져 자신의 통치기반을 지금 뒤흔들고 있다. <진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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