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품귀에 인쇄비도 껑충 "홍역"치르는 출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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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책값이 다시 들먹거리고 있다. 이미 지난주까지 몇몇 출판사들이 책값인상을 서점에 통고 해왔고 지난달 24일 종이값 인상발표와 함께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인상폭을 조정하고 있는 눈치다. 현재 추세로는 앞으로 1∼2개월안에 적어도 10∼20% 가량은 서서히 오를 전망. 그러나 독자들의 주머니사정도 있어 선뜻 발표하기를 꺼리는게 출판사들의 입장이다.
책값인상의 포문을 처음연 출판사는 명문J사. 정평있는 세계문학전집(전1백권)이 낱권 1천6백원에서 2천5백원으로 56%나 올랐다. 그러나 4년전에 책정된 책값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현실화」했을뿐이라고 출판사측은 말하고 있다. 여기에 가세한 출판사가 신진 P사. 학술서적을 문고만으로 펴내 짭짤한 재미를 본 이 출판사는 이 「시리즈」의 가격을 5백원에서 8백원으로 올려놨다. 이밖에 H사도 12∼15%의 인상을 결정, 정가표를 고치고 있다.
이처럼 책값인상이 봇물터지듯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은 그동안의 원가상승요인 압박이 너무 컸음을 말해준다. 조판비·인쇄비·제본비가 지난해9월 50%인상을 통고한 이래 계속 오르고 있으며 여기에 지난해 10월부터 빚어진 종이품귀·2중가격·독과점해제·종이값 인상의 악순환이 결국 책값인상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미 금년초 물가현실화정책의 일환으로 독과점품목에서 해제된 인쇄용지가 백상지 23.2%, 중질지 23.6%의 인상으로 낙착되어버린 것이다. 백상지가 70g9짜리 1t당 30만1천5백41원에서 37만3천2백원으로, 중질지가 25만2천6백84원에서 31만2천4백원으로 올랐다. 연쇄적 종이 파동이 결국 가격인상을 가져온 셈이지만 이로써도 종이구득난은 풀리지 않은것 같다고 출판업자들은 애태운다.
군소출판사들은 종이값인상발표이후에도 종이가 없어 수표동 종이가게를 헤매고 다닌다는 것.
제지업계는 종이의 수요급증으로 생산능력이 달려 절대공급량이 부족한데다 가격인상을 앞두고 고급 용지의 생산을 감소시키고있어 「아트」지등 인쇄용지의 유통이 중단된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도서제작비에있어 종이보다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판·인쇄·제본에 드는 비용의 인상도 책값 재조정을 불가피하게 하는 요인.
교과서개편과 학습참고서 제작의 일감이 밀리면서 조판비및 인쇄비가 지난해3월에 비해 각각 최고52.3∼60%씩 올랐다. 조판비의 경우, 활판이 사륙배판 7「포인트」기준 5천2백50원에서 7천5백원(42.9%)으로, 문고판9「포인트」기준 1천6백64원에서 2천4백원(44.2%)으로 올라있는 것이다.
한편 인쇄비도 이와 마찬가지의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활판모조기준 1천장이 4천3백73원에서 5천8백원(32.6%)으로 「오프셋」은 2천8백원에서 4천원으로 42.5%의 상승율을 나타낸것.
제본비의 경우는 좀 형편이 다르다. 제본비 자체를 올리지는 않으면서 노동인력을 구하기 힘들다는 핑계로 일을 거부하거나 표지꺾는 값이나 인지붙이는 일등에 대한 비용을 별도로 요구하고 있는 실정, 결국 3백「페이지」짜리 단행본 1권에 3540원 들던 제본비가 65∼70원을 주어야되는 형편이다.
이같은 책값인상압박의 요인들을 곧장 책값에 반영시키지 못하는 것이 출판업자들의 호소할길 없는 고충이다. 책이 생활필수품은 못되기 때문에 책값이 오르면 곧 수요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벙어리냉가슴앓듯 독자들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는 난처한 처지』라고 이기웅씨(열화당대표)는 털어놓는다.
이처럼 안팎으로 겪어야만하는 시련을 핑계로 제작을 소흘히 할수도 없는게 출판인이다. 그래서 출협은 종이수급의 근본대책수립을 여러차례 당국에 건의하고 있으며 조판비의 절약을위한 방안으로 청타기의 보급도 추진중에 있다. 아뭏든 『홍역을 치르고 있다』고 정?숙씨(출협회장·을유문화사대표)가 표현하는 현출판계의 「딜레머」를 책값인상이라는 고식책으로 일반 독자들에게만 전가시킬수는 없지 않느냐는게 뜻있는 인사들의 의견이고 보면 관계당국의 적절한 대책이 아쉽다. 【방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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