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정신이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가 3·1 운동 일을 국경일로 정해 그로부터 만 6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끊임없이 그 역사적 의의를 기리고 추모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60년 전 3월1일, 그날의 일이 민족이상의, 근대적인 대합류였던 동시에 새로운 역사적 창조에의 출발이었기 때문이다.
이 「합류」와「출발」은 이를테면 현대 한국사라는 큰 나무의 줄기요, 생명력과도 같은 것이어서 『민족사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이를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는 당면과제 역시 그것을 떠나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니, 역사의 정통성이니 하는 것을 가져야만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런 것 없이도 사람은 얼마든지 집 잘 짓고 밥 잘 먹으면서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한 개인으로서, 또한 민족으로서 정당한 삶을 살려는 윤리적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역사 속에 내재한「정당한 줄기」를 찾아 간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현대 한국사-정치사든 경제사든 또는 의식의 역사든-의 경우, 그 「정당한 줄기」의 합류점과 출발점을 기미년 3· 1운동에서 구하려 하는데는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3·1운동 속에는 실학 이후 계승돼온 근대 민족사의 모든 「생각」들과「실천」들이 대하처럼 합류해 있었다. 실학의 흐름, 척사위정의 흐름, 동학의 흐름, 민간속의 「비나리」신앙과 「한」의 정념, 그리고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독립협회운동 등-.
여기에 서양에서 들어온 「프로티스턴트」신앙의 복음주의까지 합류해옴으로써 민족저력의 총량적 발휘가 꽃피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서양의 모든 근대적 사상의 「합류」이자「출발」이 18세기 시민정신과 19세기 국민주의 민족주의에 있었듯이 한국적인 근대민족의식의 연원이 여기에 있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3·1운동을 어느 특정한 각도에서만 성급하게 편파적으로 해석하거나 외내영향력의 산물로서 도식화하려 든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한 시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러나 어떻든 현시점에서는 근대적 민족운동의 대 전환점이자 원점으로서의 3·1운동에 관한 2세 국민의 보다 뚜렷한 인식정립이 시급한 실정이다.
『3·1운동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대해 나어린 우리 2세 국민이 과연 어떤 대답을 가지고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유관순 누나, 「파고다」공원, 독립선언서, 수원의 어떤 교회사건 등 그들이 3·1운동에 관해 지녀온 상념은 너무나 단편적이요 일화적일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단편적 사건 이야기나 개인중심의 공훈담 못지 않게 더 중요한 것은 한말이후 독립운동에 관한 보다 일관된 역사교육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지식층이나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 독립운동에 관한 사료집이나 총서들은 적지 않게 출간되었던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3·1운동과 3·1정신 내지 그 이전 이후의 중요한 민족사의 대목을 국민독서용이나 시민교육용 또는 2세 교육용으로 평이하게 편찬하여 공급하는 일이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민속사의 정통성과 주체적 민족사관의 확립을 위해 여러 가지로 힘쓰고 있다. 이 노력의 과정엔 반드시「3·1운동」으로 상징되는 항일기 민족이상의 대합류의「드라머」가 중요한 연구과제로 포함돼야 할 것이다. 3·1운동 60주년을 맞아 그날의 의미와 함축을 새삼 돌이켜보는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