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의 박사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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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진기의 냉기가 가슴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환자는 「박사님」 의 괴로움에 젖은 「다음」 소리에 떠밀리듯 진찰실을 물러 나와야 한다. 묻고싶은게 어찌 한두가지 일까.그런데도 겨우 몇마디밖에묻지 못한다. 그것도 마치 죄진 사람이 수사관에게 문초를 당하듯. 문이 열리기 훨씬 전에 줄을 서서 간신히 산 진찰권을 햅여 잃을까봐 꼭 쥐고 몇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던가. 시장바닥처럼 북새통인 병원복도에서 차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잔뜩 긴장해서 기다렸는데「박사님」은 단지 몇마디 물어보고 가슴 서너군데 청진기를 대보더니 2,3일 약을 먹어보라는 말뿐이다. 대학병원에서, 종합번원에서 이른바 「5시간대기 1분진찰」을 실감하며 다소 울분과 서글픔이 뒤섞인 가슴으로 병원문을 나서는 환자들을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왜 북적대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몰리는가. 2,3일 지나면 저절로도 나아버릴 하찮은 병이라도 기어이 고명하신「교수님」이나 「 박사님」들을 찾는것은 무엇때문일까. 기껏 3시간 동안애 60∼70명, 심지어는 1백여명까지 밀려드는 환자를 봐야하는 우리네 의과대학교수들은 언제, 무슨 정력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할수 있을까.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의료보험환자에게 병원을 지정하고 있는 현 제도다. 더군다나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도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마땅히 지역사회 주민의 건강을 도맡아야할 일반개업의가 도외시된 현행 의료전달 「시스템」 에 분명 잘못이 있다. 전통적인 참다운 의사상은 바로 일반개업의(홈·닥터)에 있지 않은가. 대학병원은 감기환자를 진찰·치료하는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사실, 1차진료는마을이나 지역사회의 개업의의 소관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반영된 의료제도와 습성이 아쉽다. 대학병원과 이름있는 종합병원의 권익때문에 환자들이 지불하는 돈과시간의 대가가 이렇게 커가지고서야 병고치려다가 병얻는 꼴이 되고말테니까 말이다.

<김영치 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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