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우선은 양국 「입장」만 교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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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전쟁에서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피를 홀리며 싸웠던 미국과 중공이 30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제질서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협조할 것을 다짐하는 상징적인 행사가 지금 중공부수상 등소평을 맞는「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다.
「카터」 미대통령이 등의 미국방문을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공언한 것도 이 회담에서 어떤 구체적인 큼직한 합의를 기대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 전개될 미·중공간의 협조체계에 초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라 하겠다.
물론 미·중공은 각기 이번 회담에서 대소전략에 공동의 보조를 취하자는데 어느 정도 묵계에 이를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특히 일·중공장기무역협정 같은 미·중공장기무역협정을 체결할 가능성은 아주 높은 것으로 보인다.
등의 방미일정에서 시사하듯 중공은 등의 이번 방문에서 중공현대화계획에 미국의 자본과 선진기술을 대규모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데 1차적 목표를 두고 있으며 미국도 침체된 경기회복책으로 방대한 중공시장에 진출하는데,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공간의 이 같은 쌍무문제 이외에 가장 부각되는 것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쌍방의 중대한 관심이다.,
서울과 평양에선 남북대화를 재개하자는 제안이 5차례나 오고간 가운데 「워싱턴」에서는 「카터」와 등이 한반도문제를 아주 중요한 의제의 하나로 잡아놓고 있다. 한반도문제는 미국의 철군정책과 중공의 대소전략이라는 점에서 다같이「목의 가시」같은 중요한 현안문제이기 때문이다.
「카터」가 등의 도착에 앞서 美·중공이 남북한에 각기 「영향력」을 행사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추구하겠다고 한 발언은 이 문제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토의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한계점도 명백히 드러난다.
등 자신이 이미 『우리가 북한에 너무 지나친 압력을 가하는데는 큰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압력이 너무 심하면 북한이 소련에 접근을 시도할 것이라는 점이다』라고 분명히 밝힌대서도 미·중공의 한반도 토의에는 협의이상의 구체적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함을 시사한다하겠다.
또 등이 북경을 떠나던 날의 인민일보는 남북대화를 하자는 남북한간의 성명교환은 좋은 발전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의 분단을 획책하고있는 주한미육해공군 그리고 핵무기를 모두 철수하라』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하여 중공입장의 한계를 드러냈다.
한편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의교통로로 전달된 한국의 「대중공 의사를 중계하면서 중공의 태도를 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결과로 특히 중공의 반응여하에 따라서는 한국외교의 「새로운 폭」이 부각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또 「카터」 의 입장에선 중공을 이용해서 소련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동시에 동북 「아시아」에서의 긴장완화를 추구할 태세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주한미지상군철수의 당위성 같은 것을 찾으려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문제에 관한 당장의 어떤 해결책이 제시될 가능성은 없지만 최소한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미국과 중공이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정치 「업저버」들이 이번 미·중공회담을 남북한이 직접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남북한은 오히려 긴장을 완화하겠다는 이번 회담에 긴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미·중공 양대강국의 영향력이 남북한당사자들의 뜻에 맞게 행사될 때는 「충고와 격려」가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소지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한편으로는 갑자기 서둘러 대화「무드」를 조성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워싱턴」회담을 주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워싱턴=김건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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