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대회가 남긴것|갈채받은 "답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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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제8회「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은 종합3위를 차지, 북한보다 여전히 우위에 서 있음을 실증했다. 그러나 이대회 참가의 목적은 북한제압만이 아니며 이로 인해 다른 중요한 면이 간파될 수는 없다. 이것은 바로 한국「스포츠」가 지닌 당면과제이기도 하다. 3회에 나누어 검토해 본다.
「스포츠」를 얘기할때 흔히「드러매틱」(극적)이라는 표현이 쓰여진다. 전세(전세) 나 승패가 예기치 않게, 혹은 일거에 역전되는 양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경우 관중은 흥분과 「드릴」과 즐거움을 느끼며 경기자는 무한한 쾌감, 아니면 쓰라린 비탄을 맛보게 된다.
이 점이「스포츠」가 지니는 매력가운데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제8회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했던 한국선수단은 북한과의「메달」경쟁에서 그야말로 「드러매틱」한 역전승을 거두어 갈채를 받았다.
12일간의 대회기간중 3분의1인 나흘이 지나도록 한국은 금「메달」이 전무한채 종합순위 7위에서 허덕였다. 반면 북한은 금7개로 쾌속항진 했었다.
그러나 한국은 중반부터 「피치」를 올리기 시작, 북과의 금 「메달」차를 너댓개로 좁혀가더니 급기야 폐막 이틀 전 사태를 뒤엎어놓고 만 것이다.
4년전 「테헤란」에서의 제7회 대회때도 한국선수단은 똑같은 양상으로 첫남북 대결을 아슬아슬한 역전승으로 장식, 북한선수단을 통분케 만들었었다.
한국선수들, 그리고 대한체육회가 마치 신묘하고도 영악한 재주를 구사하는 곡예사와 같이 여겨진다.
관객인 국민들을 짐짓 초조와 실망의 늪에 빠뜨려 놓았다가 기진(기진)의 순간 환희의 구명대를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무난한 압승보다 파란만장, 갖은 곡절끝의 역전승이 보통은 훨씬 인상적이고 또 값진 것으로 느껴지기 일쑤다. 그래서 국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개선한 한국 「스포츠」는 『종합 3위 달성, 남북대결승리』를 구가하고있다.
그러나 이번 대회의 경우 한국은 종합순위 여하에 집착하는 산술적인 평가만으로 「성공」을 강조해서는 안된다.
한국선수단은 당초의 목표만 달성했을뿐 지난 제7회 대회와 비교할때 다른 「아시아」국가들을 능가하는 성장이 있었다는 흔적을 거의 남기지 못했다.
4년의 세월을 답보한 것이다. 이러한 자성(자성)을 이번에 거둔 가장 큰 수확으로 삼아야한다.
북한도 마찬가지. 주목할 변화가 있긴하나 다행히도 (?) 그 폭이 크지 않았다.
한국선수단의 견인차역할을 한「복싱」은 금5, 은1, 동3개를 따내 최고의 칭찬을 받았지만 이 성적은 평년작이다. 7회때도 금5, 은2개였으며 6회때는 금6, 은1, 동2개였다. 남북이 직접 싸운 전적을 봐도 7회때 1승2패에 이번엔 1승3패로 역시 후퇴.
육상은 백옥자쇠퇴로 몰락(이은자·서말구등 남녀단거리의 2·3위진출이 다소만회)했고 수영도 7회때 금·은 2개씩이 4년만에 동3개만으로 퇴보했다.
사격의 금1, 은6, 동8개는 7회 때의 금1, 은4, 동5개와 비슷하며 역도·「레슬링」도 각각 금1개씩으로 거의 변화가 없다.
7회때 금2개의 체조, 은3개의 탁구가 각각 은2개, 은1개로 뒷걸음쳤는가 하면 「배드민턴」은 계속「노·메달」이며 농구·배구도 남녀 모두 은 「메달」이었다가 이번엔 여자농구·남자배구가 금으로 격상하고 남자농구·여자배구는 격하, 역시 얻음과 잃음이 평형을 이루었다.
금「메달」1개씩을 따낸 궁도·「볼링」은 첫 채택종목이며 「펜싱」은 강세의 「이란」(7회때 금3, 은4, 동3)불참에 덕을 입었으니 결국 전진을 한 종목은 축구·「테니스」·「사이클」에 불과하다.
북한은 사격·「복싱」이 7회때만 못해 전체적으로 약간 후퇴했으며 육상·체조·역도 및 축구가 성적을 향상시켰다.
결국 7회대회 준우승의 강적「이란」이 불참하고 당시 3위였던 중공만이 홀로 비약하는것에 아랑곳없이, 한국은 같은 앉은뱅이인 북한하고만 「도토리키재기」식 경쟁을 한 셈이다.
특기할만한 경기력의 향상이 없이 오로지 북한과의 경쟁에서 다소 우세했다는 것만으로 자가도취할수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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