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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사양길 연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l952년 여름을 넘기고 서울 수복이 가까워지면서 육군은「문예중대」를 해체했다. 전시엔아무래도 군의 지원 없이는 활동이 어려워 나는 다른 후원자를 찾기로 했다. 그래서 당시 공군참모총장이던 사촌 매부 김양렬장군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했더니, 김장군은 「신협」을 공군정훈감실 소속으로 하도록 했다. 육군과 마찬가지로 주·부식의 지원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다행한 것은 젊은 단원들의 징병문제가 해결된 것이었다.
징집 적령기의 단원들을 공군요원으로 입대시켜 단원들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신협」을 유지할수 있게된 것이다.
전쟁중에서도 큰 타격없이 연극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이 육군과 공군의 각별한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953년 l월, 연극 『향수』를 끝으로 피난지에서의 연극도 막이 내렸다.
서울이 수복돼 「신협」도 정부를 따라 1년여만에 서울땅을 밟았다. 한겨울속에 을씨년스럽게 폐허가 된 서울. 전쟁의 비극을 절감할 수 있었다. 지루하게 여겨지던 겨울이 가고 파괴된 서울에도 새봄이 왔다.
53년4월, 「신협」은 되찾은 서울에서 첫 창작극 『나도 인간이 되련다』를 공연했다. 당시 서울엔 반듯한 극장이라곤 명동 시공관 밖엔 없었다. 전쟁의 잔해를 털어내고 「신협」단원들은 새로운 기분으로 무대에 올랐다.
유치진선생 원작의 『나도 인간이 되련다』는 북한이 한 예술가 (음악가)를 탄압하는 설정을 그린 일종의 목적극이었다.
노동자에게 일정한 작업량을 주듯, 예술인에게도 소정의 과업을 주어 그 과업달성을 위해 탄압하는 과정이 절박하게 묘사됐다.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답게 유선생의 이작품은 극적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때 이작품의 음악은 북한에서 피난온 김동진이 맡아 연극을 더욱 실감있게 했다.
유선생의 일반적인 작품은 완벽할이만큼 치밀해 「테마」·목적만을 향해 긴장의 연속으로 몰아 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작품의 구성·전개·대사등이 너무나 빈틈없이 짜여져 연극이 생활의 윤기나 여유가 아쉬운 감을 주었다. 따라서 「리얼리즘」연극이나 목적극은 언제나 성공이었다.
뒤에 유선생은 미 「록펠러」재단 초청으로 세계일주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문총환총회에서 여러 친구들이 『유선생은 외국에 가시거든 연애를 좀 하시지요. 그럼 작품에도 여유와 윤기가 흐를 것입니다』란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서울 수복 직전부터 우리나라엔 외국영화수입이 차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구경거리라곤 연극이 고작이었는데 외국영화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관객들이 차차 영화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극장 쪽에서도 영화상영이 연극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입이 높아 영화상영에 더 힘을 쏟았다.
따라서 그즈음 연극은 극장 얻기조차 어렵게까지 됐다.
그런데 수복이 되어 상경하고 보니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외화뿐 아니라 국산영화도 차차 활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제작 편수가 부쩍 늘어 연극관객들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연극인들로서는 미처 생각지 못한 사태였으며 영화로 인한 위협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됐다. 『나도 인간이 되련다』이후 『은장도』『줄리어스·시저』『가야금의 유내』 등 일련의 창작극과 번역극을 공연했지만, 영화의 영향 때문인지 큰 성과를 거둘 수가 없었다. 활발했던 피난지에서의 연극 활동에 비하면 형편없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창작극이나 외국작품의 번역극보다는 많이 알려지고 화제가 된 소설을 각색해서 연극을 해보자는 의견들이 나왔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정비석원작의『자유부인』이었다.
『자유부인』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시 대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소설. 1954년4월 『자유부인』을 시공관에서 공연했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예상했던대로 대성황이었다.
한노단이 각색하고 필자가 연출한 이 연극은 연극 자체가 훌륭했다기 보다는 소설의 인기를 등에 업고 성공한 연극인 셈이다. 이 연극에서 자유부인을 유혹하는 엉터리 사장역으로 분한 주선태의 『무엇이든 최고급품으로 주시오』하는 말이 연극을 통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이 소설은 연극이 끝난 뒤 다시 영화화도 됐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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