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체제 종료…북괴를 압박|이기탁<연대 교수·국제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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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과 중공간의「적대 관계」의 기원은 한반도를 매개로 하여 시발하였었다. 미국과 중공은 1950년 한국 전쟁에 상호 깊숙이 개입함으로써 그 이후「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인「대항체제」를 구축하여 온 것이다. 미국의 한국전 참전은 미7 함대에 의한 대만 해협 봉쇄로부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를 중 심한 과거 30년 가까이 이 지역을 지배하여 온「냉전 체재」의 구조적인 군사 및 정치적 기반은 미-중공간의「적성 관계」를 기초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의 모든 군사기지는 일본열도의「오끼나와」기지를 포함하여 중공을 포위 겨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내의 미국기지 즉 항공기지나「레이다」는 남 만주나 북경을 향하여 온 것이다.
이번 미-중공간의 공식 수교로서 상징되는 미-중공간의「앙탕트」(협조관계)는「데탕트」를 넘어서면서 적어도 한반도를 매개로 하여 구축하였던「냉전 체제」의 종료를 고하는 것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를 중 심한 냉전 구조의 변질과 변화는 극히 대칭적으로 해소되고 있다. 한반도를 중 심한 냉전 구조의 변화는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어 왔다. 그 하나는 국제 환경이라는 차원과 또 하나는 군사 환경이라는 차원이다. 우선 국제 환경이라는 차원에서 이 지역의 냉전 구조의 변질을 보면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체결된 30년 조약인「중소 군사조약」이 미-일간에 체결된 역시 한국 전쟁 직후의「미일 안보 조약」과 대칭적으로 맞서면서 구조화하고 있었다. 「중-소 군사조약」에서는「대일 군사 조항」이라는 즉 일본의 군사화가 진행된다면 중소가 2차 세계대전의 연장으로 일본에 군사적으로 공동 대치한다는 조항이 그 내용이었던 것이다.
중공 부수상 등소평은 최근 일-중공 평화조약 체결 시에「중소 조약」을 79년에 폐기 공고할 것을 공언하였다. 미-일 모두가 중공과의 적대 관계의 종료 시기를 중공이 소련과의 영원한「결별」을 고하는 80년에 종결되고 79년에 폐기 통고를 하게 되어 있는「중소 군사조약」의 종결 시기를 전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중소간의 군사적인 적대 관계에 불구하고 최근「모스크바」방송은 계속「중소 군사조약」을 소련으로서는 폐기할 수 없다고 중공을 달래고 있다. 이번 등 이「중소 군사조약」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겠다는 의사표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냉전 체제의 종료를 고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는 물론 적어도「미-일 군사조약」을 본질적으로 변질시키는 결과가 되며 과거 미국이 일본 열도기지를 매개로 하여 한국전에 개입했을 당시의 미일 군사관계는 이미 아닌 것이다.
중공이 등소평의 일본 방문에서 보였듯이「미-일 군사조약」의 강화를 강조하는 것은 이미「미-일 군사조약」의 본질적인 변질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공은 미 군사력의 한국 혹은 서 태평양에서의 주둔을 인정하고 있으며 도리어 소련의 대 중공 포위에 대항하여 주는 것으로 편의적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군사 환경 차원에서의 한반도를 중심한 미-중공간의 군사 대항체제는 미국의「아시아」 대륙주변에 깔아 놓았던 군사선의 철거가 일본열도로부터「오끼나와」∼한반도∼대만 해협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 중공 포위라는 군사 전략장의 기초를 깡그리 변화시켰다는데서 쉽게 파악된다. 특히 중공의 핵과 미국의 핵은 상호 깊이 분리작업을 하여 온 것이다. 중공의 핵은 「모스크바」를 향하고 있으며「오끼나와」를 중심 하였던 미국의 대 중공 겨냥의 핵은 일단 뒤로 후퇴시키거나 대소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로부터 미국의 전술 핵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이유도 미·중공간의 군사력 상호배제 정책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중공간의 국교 수교로 상징되는 냉전 체제의 한반도 적 와해는 한반도의 정치 및 군사환경의 본질적인 변화를 역사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를 매개로 하여 구축되었던 미-중공간의 대항 체제의 완전한 해소는 당연히 한반도의 "정치적 해결" 에도 깊이 영향 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미국과 월남간에는 군사 조약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미국과 대만간의 군사 조약의 폐기는 단연 한-미 군사 조약이나 미일 군사 조약의 변질 혹은 적어도 실질상의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고 보거나 한국이나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의 내용" 을 재 협상하거나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한-미나 미-일간의 군사 조약의 정치적·군사적 기초의 변화는 당연히 한미나 미-일간의 "동맹 관계"의 수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앞으로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의 수정 과정에서 미국과의 동맹 관계 재구축에 모든 외교적인 노력의 경주를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앞으로 있을지 모를 대 북괴 접촉의 시발은 곧 "한-미 군사조약" 의 변질을 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미 군사조약" 이라는 동맹 조약은 기본적으로 중공-북괴 군사 동맹 조약이나 북괴의 "위협"을 전제하여 한미 군사 동맹관계가 성립하였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미-중공간의 "비 적성 화" 정책이 시작되었던 72년 이래부터 오늘의 미-중공 국교 수교라는「앙탕트」는 북괴에도 치명적으로 영향 하게 되는 것이다.
「아시아」는 어제의「아시아」가 아니다. "냉전 체제" 를 대신하는 "반 패권" 이라는 "세력 균형" 의 원리가 이 지역의 정치적 원리가 되며, "반 패권"이라는 원리는 이를 뒤집어 보면 한반도에 있어서는 "민족 자결"이라는 원리가 된다.
「키신저」전 미 국무장관이 구축하려 하였던「아시아」의 질서, 즉 중공을 끌어내어 소련을 견제케 하면서 동시에 등장하는 일본을 견제케 한다는 미국·일본·중공·소련간의 고전적인 "세력 균형"이라는 원리가 한반도를 지배하게 될 때에 한반도의 이 지역에서의 "국제적인 지위"는 근본적인 변화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역사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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