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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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악처로 소문나기로는「소크라테스」의 부인「크산티페」를 꼽아야 할 것 같다. 걸핏하면 찬물을 퍼붓고, 고함을 질러「소크라테스」는 물론 이웃 사람도 깜짝 놀라곤 했다.
밤낮 돈은 벌지 않고 가두를 쏘다니며 청년들과 정담이나 하고 있는 것이 부인의 눈엔 도무지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던 수제자 「플라톤」의 "대화"를 보면 결코 악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던 날 「크산티페」의 울부짖는 모습은 너무도 처절했다고 한다.
사실「크산티페」가 없었다면「소크라테스」는 결코 「소크라테스」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먹고사는 일」에 관심조차 없었던 「소크라테스」의 가정(아내와 세 아들)을 그나마 꾸려 간 것은 부인의 덕이었다. 남의 눈엔 악처로 보였을지 모르지만「소크라테스」를 일상에 얽매이지 않은 인류의 사표로 만든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조강지처였다고 할 수도 있다.
증기 기관차를 발명한「스티븐슨」의 일화도 생각난다.
「스티븐슨」은 나이 20이 가깝도록 일자무식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탄광의 화 부.
아들 역시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였다. 그러나 그의 아내「헨더슨」은 밤이면 잊지 않고 「스티븐슨」에게 독학을 시켰다.
글자를 깨우쳐 주고, 산수를 가르친 것이다.
「헨더슨」은 첫 아기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스티븐슨」은 그 부인의 애틋한 마음을 평생 잊지 않았다. 20년만에 비로소 눈올 뜬 그는 부단한 탐구심으로 끝내는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증기 기관차를 만들어 냈다.
인류 최초의 기관차가 우렁찬 기적을 울리던 1830년 9월15일, 「스티븐슨」은 "죽은 아내가 하늘에서 나를 우러러본다"고 말했었다.
우리의 관습으로는 여자는 무조건 다소곳한 것을 더 없는 미덕으로 친다. 우리 속담에도 "시집간 여자는 팔·다리는 있어도 입은 없다" 는 말이 있다. "소리 있는 내조" 보다는 "소리 없는 내조" 를 미덕으로 여긴 탓이다.
그러나 서양의 풍속으로는「눈에 보이지 않는 내조」는 물론이고, 「보이는 내조」까지도 미덕으로 여긴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공사를 불문하고 부인을 동반한다. 선거 유세에서는 부인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대통령의 대망을 꿈꾸는「캘리포니아」지사 「브라운」은 아직 총각인 것이 유일한 결함이라고 까지 말한다.
「정치적인 성공」은 그 절반쯤이 내조의 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그쪽의 풍속이다.
이번 우리의 10대 국회 선거에서도「내조의 공」으로 당선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의 생활 풍습도 많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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