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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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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람들이 가장 솔직해 지는 것은 일기를 쓸 때나「참회록」을 쓸 때다.
남에게 밝히기를 꺼리는 부끄러운 비밀까지도 적나라하게 적어두는게 일기이기 때문이다.
「루소」의『참회록』을 보면 도둑질을 하고 나서 그 죄를 하녀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고백이 나온다.
역사학자들이 자료로 다루는 사료는 신빙도에 따라 1등 사료, 2등 사료 등으로 나누어진다.
일기가 아무리 솔직해도 1등 사료에 끼지는 못한다. 일기에도 거짓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앙드레·지드」의 일기는 그 뛰어난 문학성과 솔직성으로도 일기문학의 최고봉을 이룬다.
그러나 사가는 어떤 일기라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료로 보지는 않는다. 비록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일기 속에서라도 진실을 그릇보고 그릇 기록해두고픈 심리적 허점을 완전히 떨어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그날그날 적어나가는 일기라도 며칠 후에 기억을 더듬어가며 메워나가는 일이 있다.
그러나 사람의 기전처럼 믿을 수 없는 것도 없다 자기는 사보이었다고 믿고 있어도 전혀 진실과 엉뚱하게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사가들은 이렇게 의심이 많다.
아무리 틀림이 없는 것 같은 사료라 해도 이리 재어보고, 저리 파헤쳐 보며 그 신빙도를 가려낸다.
가령 단군이 있었다는 얘기를 뒷받침하는 제일 좋은 자료는 단군이 남긴 책이며 옷가지며 집터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1백% 믿어도 좋은 사료가 된다. 그 다음으로는 단군을 봤다든가,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사람이 남긴 단군에 관한 기록이다.
그 신빙도는 80%이하가 된다. 이렇게 보면 완전히 믿어도 좋은 사료란 그리 많지가 않다. 이래서 사가의 일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전혀 신빙도가 낮은 사료들만이 남아있는 것들은「전설」로 묶어버리는 수밖에는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1백년 전의 일만해도 1백% 진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지금까지 수집된 사료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종합의 결과 가장 진실에 가깝다고 여긴 과거의 상들인 뿐이다.
언제 새로운 사료가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언제 역사책에 적혀 있는 얘기가 뒤집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역사가들이 온갖 과학적인 역사연구방법을 다하여 되살려낸 어제의 역사의 상을 그냥 진실이라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에 역사 이전의 시대에 대한 시비가 엉뚱하게 학계 밖에서 일고 있다. 학문이전의 얘기에 학계가 맞서야 한다는 것부터가 호화적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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