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타리에 간판역「탤런트」 20명 동원은 지나친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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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TV방송국간의 시청률 경쟁은 불가피한 일이며 특히 상업 방송국간엔 불꽃튀기는 치열한 대결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발전적인 경쟁일 때, 대국적인 견지에서나 시청자의 입장에서 바람직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TBC-TV의 매일연속극 『여자의 얼굴』(나연숙 극본·곽영범 연출)과 맞붙은 MBC-TV의 매일연속극 『행복을 팝니다』(김수현 극본·박철 연출)에서 보여주는 경쟁이 과연 바람직스러운 것인가엔 의문이 간다.
『행복을 팝니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그럴싸한 상황(한 울타리안에 살지만 한 가족이 아니라는) 설정에 의해 유리한 고지에 섰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여하튼 두 연속극은 똑같이 간판격「탤런트」들을 주축으로 20명 안팎의 숱한 「탤런트」들을 총동원한 「은·퍼레이드·쇼」의 부질없는 겨룸으로써 시청자들을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드라머」자체에 대해 운운하기 이전에 별난 극작술, 별난 경쟁도 다 있구나 하는 한심스러움이 앞선다.
2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방영시간 동안에 그 숱한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한번씩 비추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드라머」를 보여주겠다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다. 똑같은 시간대에 방영되니만큼 시청자가 어느 쪽이건 선택하리라고 간주한다면 그것은 착각일 수밖에 없다.
오늘의 시청자들은 물론 취향에 맞게 「채널」을 바꾸기도 하지만 볼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서슴없이 「TV를 꺼버린다」는 사실을 TV방송국 측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 한가지 지적되어야 할 것은 TV연기진의 「매너리즘」이다. 1주간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머」의 수가 많은 반면에 출연진의 수는 한정돼 있다는 점, 극본 자체가 「스토리」뿐이고 「인간상」묘사가 없는 점, 「아마추어」적 연출수준 등 많은 문제점을 제쳐놓고 유독 연기문제만을 논란할 수는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연기풍토가 용납될 순 없는 일이다. 새로운 역을 맡을 때마다 그 「인물상」을 구현하기 위해 피나는 고민과 노력을 하는 「성실한 연기인」이 3TV국을 통틀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모두 한결같이 그 얼굴, 그 목소리, 그 거동인데 다만 겉치레로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약간 고칠 뿐이다.
특히 「스타」급 「탤런트」들은 「매너리즘」이 단명을 뜻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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