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협회초청으로 내한한 프랑스작가 로브그리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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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소설」(누보·로망) 또는「반소설」(앙티·로망)의 대명사처럼 돼왔던「프랑스」의 작가「알랭·로브그리예」씨(56)가 11일 한국에 왔다. 『작가는 세계를 다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국제문화협회초청을 받아들여 1주일간 여정을 잡고 왔다』고 말한다.
25년전 그가 처음 불 문단에『고무』를 발표했을 때『이것이 무엇인가, 이것도 소설인가?』하면서 평론가들은 물론 일반독자들이 놀라움과 비난을 퍼부었는데『이제는 20여년전의 이 작품들이 학교교재로 쓰일 정도로 독자들이 넓어졌다』고, 그는 예술작업은 바로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스탕달」이나「플로베르」, 가깝게는「프루스트」「카뮈」「사르트르」의 소설을 읽어왔던 독자들에겐「이야기 줄거리가 없고 문장만 있는」「로브-그리예」의『질투』(57년)나『엿보는 사람』(55년)이 하나의 엄청난「반소설」이었다.
『그렇지만 난 반소설이란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새로운 소설일 뿐입니다. 예술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풀로베르」나「도스트예프스키」도 다「누보·로망」을 쓴 것이지요.』
짙은 턱수염에 젊음을 풍기는「로브·그리예」씨는 13일 하오3시 서울「하야트·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바로 이「새로움의 추구」가 그로 하여금 신소설을 낳았고 또 지난 10여년간 영화에까지 치닫고 있다고 했다.
원래 농업기사로「프랑스」국립통계학 연구소장까지 역임했던「로브·그리예」씨는 30세에「느닷없이 글을 쓰고싶어」문학의 길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작가는 물론 그가 살고있는 사회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갖고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사르트르」처럼 그 작품이 사회에 기여해야한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작가는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여 미래사회에 역할하는 것뿐입니다.』 소련작가들의 이른바 사회주의「레알리슴」에 그는 이론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이라고 밝힌다.
그는「참된 예술」에의 힘은 바로 독자에게 중요한 변화를 주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예술작품은 독자의 마음에 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변화는 독자자신의 자유와 창조를 개발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60년대 초부터 영화에 뛰어들어『유럽특급열차』『에덴과 그 이후』등의 명작을 만들어낸 그는 지난달「파리」에서 자신의 미발표 처녀작『시역자』와 그리고 최근작『황금의 삼각지점에 관한 추억』등 2권의 책을 동시에 출간, 문단에 다시 상당한 화제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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