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관전자의「매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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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2일 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있었던「카르도나」-정순현간의 WBA「주니어·페더」급「타이틀」전에서의 일부 한국관중들의 추태는 우리가 아직도 문화국민이 못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말았다.
주번이「카르도나」의 판정승을 선언하자마자 이성을 잃은 관중들은 일제히 소줏병과 의자, 깡통들을「링」위로 집어 던졌다.
이 상식이하의 창피스런 추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도가 아직도 이것밖에 안되느냐 하는 근본적인 자기 환멸을 갖게 만들었다.
경기장에 운집했던 일부 군중들의 추태가 한국민의 교양전반을 반영하는 평균치거나 중위수는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일부 군중들이 노출시킨 행태에서 우리는 그 어떤 일반적이고 공통된 인자와 분모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우선 사태의 수치스런 항목들을 하나하나 주목해 볼 때 그것은 모두가 상식과 예와 법을 무시한 지나친 행동 그것이었다.
심판의 판정에 폭력으로 불복하려드는 그 탈법적 행동.
「스포츠」를『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억지를 부려서라도 꼭 이겨야만 하는 전쟁』쯤으로 생각하는 그 비뚤어진 인식.
상대편이 유리해지고 이쪽이 불리해지면 으례 술기운을 빌어 사생결단이라도 내자는 듯 날뛰는 그 성급한 기질.
이러한 난폭한 습성을 우리는 간혹 전철매표구 앞에서도 보게되고, 시골장터의 씨름판에서도 목격하며, 각종「게임」과 천재와 사고 때도 흔히 발견하게 된다.
관광지와 차안에서, 불난「빌딩」·「아파트」와 통금직전의「택시」타기에서, 그리고 일상적인 ,보행로와 군중이 모인 곳에서, 그런 몰상식과 비례는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또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하기야 남미의 어떤 두 나라도 축구경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일도 있었다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째서 툭하면 이럴까 하는 안타까운 자탄을 금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이젠 독립 30년·전후 25년, 1인당 GNP만도 1천「달러」를 자랑하는 신흥국가의 어엿한 국민이 되지 않았는가.
사람이 자라면 나이 값을 해야한다고, 국민의 교양과「매너」도 경제수준이 향상될수록 그만큼 높아지고 다듬어져야할 것이 아니겠는가.
「룰」을 지킬 줄 알고, 수치와 명예를 가릴 줄 알며, 경기와 싸움을 구별할 줄 알고, 주먹다짐이나 억지보다는 합리적인 처신과 예를 숭상할 줄 알아야만 우리는 비로소 세계시민의 대열에 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언제까지나 피란민적 습성이나, 혼란기적 습성을 버릴 줄 모른다면 문화국민으로서의 우리의 자격은 좀처럼 얻어질 수 없을 것이다.
마침 치안당국에서도 난동자를 엄단하겠다고 했지만 이 기회에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스스로의 심성과 행동을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할 것이라 다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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