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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자식 일에 정신 팔 때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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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요 두어 달 가까이 우리 사회를 지배한 키워드를 한 개 꼽으라면 ‘자식’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세월호 사고부터 6·4 지방선거까지 온 나라 어젠다는 ‘자식’으로 모아졌다. 수학여행 떠났다 세월호 사고로 돌아오지 못한 아들딸들을 보며 이 땅의 부모들은 너나없이 환장(換腸)이 됐었다. 한 지인은 “사고가 났던 날 아이들이 들어오기에 꼭 안아줬다. 자식들이 무사히 집에 돌아와준 게 그렇게 감사한 일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러더니 지난 6·4 지방선거에선 몇몇 후보의 자식이 이슈를 장악했다. 새누리당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는 막내아들이 페이스북에 올렸던 ‘국민정서 미개 글’로 타격을 받았고, 서울시 교육감에 도전했다 낙선한 고승덕 후보의 딸은 페이스북에 ‘아버지는 자기 자녀 교육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교육감이 될 자격이 없다’는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요즘 내 또래 엄마들은 모이면 세월호와 선거의 아들딸 얘기를 한다. 이런 얘기는 대개 “애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로 시작해 “어른들 잘못이다”로 끝난다. 선거 후 만난 친구들은 오히려 ‘선거의 아이들’을 걱정했다. “정몽준 후보 아들은 재수생이라는데 공부는 제대로 될는지” “고승덕 후보 딸은 아버지를 고발했다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 텐데”…. 자식 문제는 남의 자식이라도 걱정스럽다.

 그러는데 한 독자에게서 편지가 왔다. 70대 여성 독자는 지하철에서 중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두 여학생에게 당한 사연을 소개했다. 이분은 지하철에 서 있다 허리가 아파서 앉아있는 한 아이에게 가방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단다. 그랬더니 이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검지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더라고 했다. “가방을 바닥에?” 하고 물으니 이번엔 손가락을 치켜들고 선반을 가리키더란다. 그래서 “이 행동을 네 부모님한테 얘기하라”고 했더니 친구로 보이는 옆의 아이와 함께 말은 않고 눈을 부라리더라는 것이다. 이 독자는 “국가를 개조한들 애들을 이렇게 예의 없이 기르면 좋은 나라가 되겠느냐”고 했다.

 이 편지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이젠 남의 자식 얘기에 정신 팔 때가 아니라 내 자식 교육부터 살펴야 한다는 자각. 아이가 너무 편협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건 아닌지, 부모를 탄핵할 만큼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밖에서 지하철 아이들처럼 예의 없이 행동하도록 기른 건 아닌지…. 실로 자식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어쨌든 아이가 잘못되면 부모 인생도 잘못된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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