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중동질서 전망] 終戰은 새판짜기의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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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라크 전쟁의 끝은 중동지역에 발생할 대지각 변동의 시작일 뿐이다."

내가 만난 요르단의 일간지 알두스투르의 나빌 샤리프 편집국장이 이라크전과 향후 중동질서에 관해 내린 결론이다.

끝내기 수순에 접어든 이라크전을 바라보는 중동인들은 한마디로 '분노와 불안'에 빠져 있다.

특히 중동 정권들은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라크전으로 촉발된 반미 감정이 반정부 구호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첫 번째 도전이라면 전후 미국 중심의 새로운 중동 판짜기는 두 번째 도전이다.

중동 각국 정권이 특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전후 중동질서다. 대부분의 정권이 이라크 다음 목표가 어디가 될지에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중동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미국의 '차기 타도 대상국'은 북한이 아닌 이란이다. 기존에 배치된 군대를 멀리 북한에까지 이동하기보다는 인접한 두 번째 '악의 축'을 무장 해제시키려 할 것이다.

이란은 미국 정치엘리트의 세계관에 가장 반하는 국가다. 1979년 이슬람 혁명과 더불어 미국은 '비극적으로' 이란에서 추방됐다.

"'악의 축'으로 이미 지목된 이란은 미국이 추구하는 민주화에 가장 대치되는 극단에 위치한다"고 이집트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의 왈리드 카지하(정치학)교수는 언급한다.

미 육군대학 중동학과장인 래리 굿선 교수도 "군사적 위험이 따르는 북한, 그리고 경제적 가치가 없는 시리아.예멘보다는 이라크에 근접해 있으며 카스피해 유전을 소유하고 있는 이란이 미국에는 매력적인 목표"라고 지적한다.

미국이 이란을 영향력 아래 두면 중동의 판세는 완전히 바뀐다. 이란은 전세계 원유매장량의 9%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카스피해 유전을 갖고 있는 국가다.

더욱이 미국이 이란을 '차지'하면 이스라엘.요르단.이라크.이란으로 연결되는 미국의 에너지 및 안보 벨트가 완성된다. 이 벨트는 멀리 아프가니스탄을 위시한 미국의 중앙아시아 동맹국들과 연결된다.

중국의 중동 에너지 자원 진출로를 완전히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위로는 러시아의 영향력과 아래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걸프 산유국들의 에너지 공급 주도권을 넘겨받을 수 있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도 더이상 미국에 '반항'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주장해온 이스라엘의 '생존권 보장'도 결실을 보게 된다.

다음 단계는 반미 입장을 견지해 온 아랍국가들이다. 아라비아반도 남단의 예멘, 아프리카 대륙의 수단과 리비아 등에 미국은 강력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국제 테러세력의 분쇄, 독재 정권 축출, 국민 해방을 골자로 한 '자유 전쟁'이 이 나라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 굿선 교수는 "독재자 후세인으로부터 국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는 미국의 의지는 다른 중동국가들이 언제라도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전망한다.

최첨단 무기로 지상과 공중을 지배하는 미국은 중동의 주도권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중동학자들과 중동인들은 "미국이 주장하는 '중동평화 및 민주화'라는 대의를 실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샤리프 편집국장은 "미국이 군사적 힘으로 중동에 민주정권을 수립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동인들의 심리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미국이 취한 중동정책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다. '될 일도 미국이 있으면 안된다'식의 감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정착노력은 상당한 난관에 부닥칠 것이다.

이는 중동의 정치적 혼란을 의미한다. 이 혼란을 틈타 민족적.종교적 자부심에 손상을 받은 중동인들의 반미감정이 폭발, 무수한 테러세력으로 거듭날 것이란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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