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 토론방]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자율 정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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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익명성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 소수자 보호와 사회.문화적 다양성의 바탕이 되는 중요한 권리다. 물론 모든 권리는 남용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 때문에 권리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명예훼손 같은 문제들이 자율적으로 해결될 수 없을 만큼 심각하지만 언제 자율 정화를 위한 노력을 해왔던가. 우리의 정보화 교육은 늘 정보통신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정보화 시대에 제기되는 새로운 인권에 관한 교육, 정보화 시대에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교육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가장 많은 언어폭력에 시달려왔던 여성운동.동성애자 사이트들은 정작 실명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그들은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사이트에 맞는 정화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게시판의 활력이 더욱 높아졌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도 더 많이 모을 수 있었다. 반면 실명제를 도입했던 공공기관 게시판들은 방문자 수가 급감해 활력을 상실했고 광고게시판이 돼버렸다.

결국 문제는 인터넷의 익명성이 아니라 숱한 문제를 안고 있었으면서도 덮어왔던 우리 사회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인터넷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명제를 주장하는 이들의 선의와 상관없이 인터넷 실명제는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시 덮어버리는 해결방식이다. 민주주의는 본래 소란스러운 게 아니던가.

박준우(함께하는 시민행동/ 상근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