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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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중공 평화 조약」후에 중공의 대 한반도 정책은 어떻게 표출될 것이며, 그로 인해 한반도를 장으로 한 소·중공의 전략 충돌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중공의 등소평은 『한반도 문제에서 주목할 점은 소련이 한국에 대해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등은 북괴의 적화 통일 노선에 대한 계속적인 지지, 남북 교차 승인에 대한 거부자세를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등의 이 같은 발언과 그 전후의 중공 수뇌들의 동향을 두고 볼 때, 중공은 결국 대일 접근이라는 최우선 과제와, 북괴의 회유라는 또 하나의 정치적 필요를 동시에 충족시키려 애 쓰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일·중공 평화 조약은 어느 의미에서 『미·일은 중공과 북괴 공동 의적』이라고 공언했던 1969년의 주은래·북괴 공동 성명을 퇴색시킨 점이 없지 않다.
이 점은 『일 중공 조약 후 중공은 대외 관계에서 일본을 최우선시키고 싶다』고한 9월3일자 등의 발언으로도 명백히 반증되는 것이다.
중공의 이런 전략 변경은 북괴에 대해 충격적인 사실이요, 또 적지 않은 곤혹을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일·중공 조약 체결 이후 북괴 공식 기관이 계속 이에 대해 침묵을 지켰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그후 북괴의 북경 주재 대사는 미·일의 한반도 현장 안정 정책을 극단적인 어두로 헐뜯음으로써 일·중공 조약에 대한 북괴의 경제와 불만을 간접적으로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중공의 신화사 통신은 이 대목을 깨끗이 생략해 버림으로써 북괴의 반발을 묵살해 버렸다.
이 일련의 동향에서 감촉 할 수 있듯이, 중공·북괴간의 이해 관계 불일치는 분명히 배태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전 한반도의 무력 적화라는 북괴의 조급한 지역적 야욕과, 전세계적 반소 전선 구축이라는 중공의 전략적 필요가 서로 안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 작은 징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도 불구하고 중공은 반소 전략상 북괴의 친소화를 예방해야 할 필요를 안고 있고, 북괴 역시 중공이라는 후견자를 놓쳐서는 안될 입장이다.
이 필요에서 북괴는 중공의 반 패권주의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으며, 중공 또한 북괴에 대한 명분론적 지지만은 철회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등이 예의 『소련의 대한 영향력 운운』과 더불어 『한반도 통일은 1백년, 아니면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등은 최근의 소련의 「어떤 대한 태도」를 의식적으로 강조해 환기시킴으로써 소련을 견제하는 동시 북괴의 대소 불만을 더욱 자극하려고 했고, 『그러나 우리는 한국과 교류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북괴의 환심을 사두려고 애썼다.
그러고는 다시 북괴의 적화 통일 노선에 대한 원칙적인 지지를 재확인하면서도 한반도 통일이 장구한 세월을 요할 것이라는 시사를 덧붙임으로써 급격한 현상 변경론엔 동조하지 않음을 암시했다.
오는 9일 평양에 와서 할 그의 연설 역시 그런 정치적 명분론과 이중성을 교묘히 구사 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 그 어떤 현상 안정에 합의하기 전까지는 중공의 그런 자세엔 별다른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우리측과 미·일로서는 저쪽 편의 미묘한 내부 기류를 정확히 읽어, 적절한 대응으로 임할 수 있도록 해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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