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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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어의 「볼리」(Volley)라는 말은 원래 총탄을 퍼붓는 상태를 뜻한다. 일제사격도 「볼리」라고 한다.
배구를「볼리·볼」이라고 하는 것은 인상적이다. 공격 일변도의 비정한 경기를 연상하게 한다.
배구의 「룰」을 보면 사실 그렇다. 농구나 축구, 또는 「핸드볼」은 어떤 테두리 안에 공을 집어넣어야 득점한다. 그러나 배구는 「테니스」처럼 그런 테두리가 따로 없다. 어느 한 구석, 공백 또는 허약한 자리만 엿보이면 그대로 공격해 점수를 올린다. 그야말로 전면 총력전을 벌여야 하는 비상한 경기다.
「토스」와 「스파이크」. 배구의 극치랄까. 「네트」 가까이에서 마치 깃발을 올리듯 「볼」을 치켜주면 「스파이커」는 적을 눈앞에 둔 맹수처럼 작렬하는 힘으로 그것을 때려 부순다.
공격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서브」를 받아내는 극한의 상황도 있다. 일단 그 위기를 넘기면 「토스」와 「스파이크」로 연결된다.
이런 기승전결은 번개처럼 반복된다. 여섯명의 선수는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볼」은 한쪽 「코트」에서 세번이상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위기와 위기의 연속. 그래서 「볼리·볼」인가보다.
바로 이 경기를 남자도 아닌 여자선수들이 해내는 것은 참 대단하다. 요즘 소련의 「레닌그라드」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여자배구선수권대회는 실황중계를 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이런 국제경기 때마다 용명을 날린 우리 여자선수들의 회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외국 유명 「팀」의 선수들은 하나같이 장신들이다.
공격선상에 늘어선 그 장신들은 마치 절벽같다.
우리선수들이 그 벽에 구멍을 뻥뻥 뚫은 것을 보면 장렬한 전사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더우기 지난 77년부터는 「블로킹」을 「오버·타임」으로 치지 않는 새로운 「룰」이 적용되고 있다. 장신의 벽이 한층 더 높고 두터워진 셈이다.
평균신장에서 우리 여자선수들은 소련 「팀」에 비해 7㎝나 뒤진다. 그러나 이들마저도 영패시켰다.
인간사의 성패는 환경보다는 그 노력에 달려 있다는 하나의 감동적인 교훈이다. 투지·인내·신념이야말로 가장 강한 성공의 무기다. 바로 그것을 우리 여성들은 세계의 무대에서 그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정상을 눈앞에 두고 두 「게임」을 남겨 놓고 있다. 우리와는 번번이 호적수인 일본 「팀」과의 대결이 조마조마 하다.
이번 대회는 그것이 「레닌그라드」에서 열리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겐 색다른 의미를 갖는다.
소련하늘에 태극기를 날리는 날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파이팅」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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