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 있는 조세 부담」의 시발|한승수 <서울대 사회대 교수·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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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제 정책은 경제 목표의 시녀일 뿐 올바른 정책은 올바른 목표의 실정을 전제로 한다.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서 조세 정책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러한 뜻에서 정부가 제의한 세제개혁은 이 개혁이 목표로 하는 내용과 방향을 함께 살펴가며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입에 맞는 떡이 없다』 듯이 비록 이번 세제 개혁이 부분적이고 보완적인 것에 그쳐 버린 감이 없지 않으나 이 개혁의 목표는 어느 개혁보다도 우리 경제가 지향해야할 장기 목표에 합당한다는 뜻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번 세제 개혁이 달성하고자 하는 경제 목표는 「형평 있는 소득 분배」와 「물가 안정」들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무릇 경제성장과 형평 있는 소득 분배,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이 서로 배타적 (trade-off) 관계에 있다는 논리에 우리는 모두 세뇌되어 있다. 고도 성장이 지속되는 우리 나라와 같은 경제에서 물가는 수요와 공급량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상승 작용을 받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어느 정도 고도 성장의 희생 없이 물가의 안정은 기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한편 경제성장의 요인은 자본 축적이고 이러한 자본은 소비 성향이 높은 저소득층보다는 상대적으로 저축 성향이 높은 고소득층에게 소득 분배가 유리할 때 저축→투자를 통하여 더욱 그 축적이 가능하고 따라서 고도 성장이 지속될 수 있으므로 소득 분배는 불공평해도 할 수 없다는 논리에 우리는 할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악순환은 시간이 흐르면 흘러갈수록 해결할 수 없는 궁지에까지 이르를 가능성이 커지므로 이 시점에서 정책과 제도의 힘으로 이를 끊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중동「붐」을 타고 해외부문에서의 통화량 증가로 시작된 부동산 투기와 이에 따라 촉발된 환물 사상은 물가 상승 압력을 더욱 부채질했고 노력 없이 돈을 버는 (gain) 사람들이, 노력하여 돈을 버는 (earn) 사람보다 훨씬 재주 있게 보였다. 태어날 때부터 투기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시정인들의 인성을 탓만 할 수도 없다. 부동산 투기는 경제 여건의 조성, 제도적 결합, 그리고 윤리성의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일 뿐이다. 부동산 투기에 대한 중과세는 제도적 결합을 보완할 것이며 이것이 일반 물가에 미치는 효과도 안정적일 것이다.
이번 개혁은 자본 소득에 대하여도 중과하여 증권거래세를 신설하고 중소기업 및 중산층 이하에 대해 조세 부담을 경감토록 하여 소득의 형평 있는 재분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점진적으로 모든 원천에서의 소득은 과세의 대상으로 흡수되어야 하며 고소득층이 저소득층 보다 불로소득자들이 근로소득자들 보다 누진적으로 더 많이 과세되도록 조세 제도가 개선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일련의 개혁이 자본 시장의 원활한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도 않다. 그러나 마치 보호의 울타리 안에서 너무 오래 자란 국내 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둔화되는 것과 비슷하게 투자자들이 세제의 혜택을 오래 받는 것만이 자본 시장의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중진권에 돌입한 우리 경제는 체질 개선을 위하여 각종 특혜를 전반적으로 재검토, 철폐해야 할 단계에 이르르고 있지 않은가.
물가 안정을 통하여 서민 생활을 안정시켜 저축을 장려하며 소득 재분배로 빈부의 격차를 줄여 가는 것은 사회적 균형을 유도하면서 국민 총화를 돈독히 하는 길이며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첩경이 될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제는 끊임없이 검토·개선되어야하며 이번 개혁은 이를 위한 겸손한 출발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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