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싱글로브」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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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정계는 지금 「구리스」(율서) 통합막료회의 의장의 해임문제로 한국의 「아파트」특혜분양사건 만큼이나 시끄럽다.
통합막료회의 의장이라면 우리의 육해공군 참모중장 격.
사건의 발단은 「구리스」의장이 『유사시에는 자위대의 일선지휘관이 독자적 판단으로 초법규적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발언한데서 비롯되었는데 현역인 「구리스」의장의 이같은 발언은 즉각 「시빌리언·컨트롤」(cvilian control)거역으로 몰려 끝내 목이 잘리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시빌리언·컨트롤」이란 이 경우 『군이 정흡에 우선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따라서 이른바 평복파 속에서는 『자위대의 최고책임자는 수상이고 또 그같은 주요사항은 각의 등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복파가 월권적 내지 절차를 무시한 발언을 함부로 하여 평지풍파를 일으켰다』고 항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구리스」의장이 제복을 벗음으로써 평복파가 승리한 셈이지만 파문은 한없이 확대되고 있다. 『제복파와 평복파의 알력』『일본판 「싱글로브」사건』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가 하면 『일본의 재무장을 촉진시키기 위한 희생타」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국민들도 「구리스」의장 사건에 대해서는 두 파로 나누어져 한쪽에선 『당연한 발언』, 다른 쪽에서는 『위험천만의 발언』이라고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구리스」해임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방위체제가 강화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후꾸다」 일본 수상도 「구리스」의장의 해임을 결재하면서 『한번 홀린 땀을 체내로 돌려 넣을 수 없듯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취소할 수 없는 것』이라고 술회,「시빌리언·컨트롤」에 반하는 경솔한 말을 한 「구리스」의장을 해임시키긴 했지만, 그 대신 그 뜻은 살려 유사시 입법을 서두르도록 지시.
「구리스」의장은 어쩌면 비록 목은 잘렸어도 일본의 재무장을 촉진시키는 촉매제 구실은 했다고 자부하면서 제복을 흔쾌히 벗었을지도 모른다. <김두겸 동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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